| [문학마당]가뭄에도 옹달샘은 마르지 않았다 김익환 수필 |
| 2017년 10월 09일(월) 1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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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오염도 범접하지 못할 깊은 산골에 터를 잡아 여간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티 나지 않게 맑고 맑은 물을 낮은 곳으로 흘려보내 인간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옹달샘. 인심 각박한 도심의 심야에 내가 그 옹달샘을 만난 것은 하늘이 내린 그날의 행운이었다.
오랜 가뭄 끝에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는 유월이십칠일 새벽 두시. 낮게 드리운 검은 구름이 사위(四圍)를 가로막고 있었다. 내가 속한 문학단체에서 일본으로 문학기행을 떠나는 날이다. 인천공항으로 이동할 전세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광천 터미널 건너편까지 시간 맞춰 가기위해 봉사 문고리 잡는 심정으로 콜택시를 요청했다. 다행히 집 근처에 대기차량이 있었던지 곧바로 ‘3011호 기사분이 3분후에 도착예정’이란 문자 메시지가 왔다. 정해진 시간에 도착한 택시기사는 심야임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손님맞이가 여간 살갑지가 않다. 그 덕에 즐거운 마음으로 목적지에 도착하여 몇 푼 안 되는 거스름돈을 사양한 채 그와 작별을 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 해야 할까? 즐거워야 할 여행에 한동안이나마 마음고생을 해야 하는 악재가 도사리고 있을 줄이야…. 케리어(carrier)를 버스 짐칸에 실어놓고 차에 오르려는데 핸드폰을 넣어둔 여름잠바 왼쪽 호주머니가 무게감이 없다. 택시 뒷좌석 안쪽에 놓인 여행 가방을 끌어 내리는 과정에서 속이 얕은 호주머니속의 핸드폰이 탈출을 해 버린 것이다.
순간 멍해진 머릿속을 불길한 예감이 꽉 채운다. 핸드폰 케이스 안에는 신용카드와 운전면허증이 들어있다. 고리에는 L문우가 ‘말띠’인 나의 출판기념 선물로 뛰는 말 형상의 금 한 돈짜리 액세서리도 달려있다. 시간은 새벽 두시 반, 버스는 곧 떠나야 한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택시 번호가 ‘3011호’라는 것과 콜을 신청했던 ‘광주엔콜’이라는게 전부다. L 문우의 핸드폰을 빌려 114에 ‘광주엔콜’ 전화번호를 물으니 등록이 안 되었다고 한다.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신용카드와 핸드폰의 사용중지를 신청해야 하는데 심야에 어디로 신청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데 버스는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아, 이런 경우를 ‘천우신조’라 하던가? 바로 그 찰나에 택시 한 대가 버스 정면에 서더니 기사가 내려, 버스 앞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반사적으로 차에서 내려 “3011호 기사님이신가요? 하니 “연제동에서 탑승하신 손님이신가요?” 하고 되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핸드폰을 내밀며 “손님이 내리신 후 젊은 여자 한분이 탔는데 뒷좌석에 핸드폰이 있다고 일러줘 그분을 내려주고 차를 돌려 왔습니다.” 라고 한다. 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인가. 경황 중에 지갑이 든 잠바를 버스에 두고 내린 터라 호주머니를 뒤지니 천 원짜리 몇 장이 나왔다. 기본요금이나 하라고 건네주니 ‘당연한 일’을 했으니 괜찮다며 극구 사양하는 걸 손을 잡아 쥐어주고 작별을 했다.
버스에 올라 일행들에게 금방 있었던 일을 들려주니 하나같이 감동을 하며 핸드폰 분실 때 겪은 일화들을 화두에 올린다. 어떤 사람은 10만원을, 누구는 20만원을 주었고 심지어는 영영 돌려받지 못했다는 등 당연한 일이 매몰 돼 버린 사례들이 꼬리를 문다. 여러 사례들을 듣노라니 그에 대한 고마움이 배로 커지며 나의 궁색한 보답이 부끄러워진다. 내 뒤를 이어 택시를 탔던 양심고운 여인과 기사님의 자기희생적 선행이 아니었다면 3박4일의 여행이 과연 즐거웠을까?
그의 말대로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 치더라도 가까운 경찰관서에 신고만 해도 자기 몫은 다 한 것이 아니겠는가. 함에도 그는 자신의 영업을 포기한 채, 버스가 출발 했을지도 모르는 그곳까지 되돌아와 여행 중에 내가 안고 있어야할 노심초사를 말끔히 씻어주지 않았던가. 그것을 어찌 ‘당연한 일’로만 치부할 수 있겠는가? 여행을 즐겁게 마치고 돌아와 그의 주소를 알아내서 소품이지만 여름용 등산조끼 한 점을 구입해 보내주고 나서야 떠날 때의 찜찜했던 마음은 조금 해소 되었지만 그날의 감동은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그 택시기사가 내게 베푼 행동은 그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지켜오고 있는 ‘관습’대로라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런 일에 감동하고 칭찬과 찬양으로 회자되는 까닭은 왜 일까? 그것은 비양심 비정상이 활개를 치고 있는 세태가 만들어낸 부끄러운 산물이 아니겠는가.
맑고 맑은 옹달샘을 더럽히지 않으려 세수하기를 포기한 토끼 같은 양심.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청량(淸凉)한 물을 계곡으로 흘러 보내 우리네 삶에 활력을 넣어주는 깊은 산골의 옹달샘. 이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세상을 가득 메울 수 있는 날은 어디쯤에서 몸 풀기를 하고 있을까! 그런 날이 하루빨리 와 주길 염원해 본다.
<약력> 2001년 월간수필문학 등단,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부회장역임, 한국 수필작가회 이사 역임, 광주문인협회 이사 역임, 광주수필문학회장 역임(현 고문), 수필집 ‘백련꽃 여인’(200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