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문예르네상스를 꿈꾸다](7) 호남 회화사 집대성 꿈꾸는 호남지방문헌연구소 이선옥 교수 “남도 서화의 감성, 세계적 소통코드로 재정립해야”

2017년 11월 01일(수) 18:48

호남지방문헌연구소 연구실에서 미소짓고 있는 이선옥 교수.

이 글은 전남문화관광재단 남도문예르네상스 콘텐츠관광자원화사업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한국 미술이 원재료가 워낙 좋아요. 그림에 감동이 있지요.”
광주 중흥동, 전남대 동창회관에 위치한 호남지방문헌연구소를 들어서서 문 두 개를 지나면 공간 오른편에 빼곡히 쌓인 책들과 책상 위에 걸려있는 여러 크기의 서예 붓, 서화 한 폭이 눈에 들어온다. 여느 연구자의 방처럼 도처에 널린 많은 자료로 부산하지만 단아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기품이 서려있는 이곳에서 호남 예술에 대해 누구보다도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계신 이선옥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서화’는 우리에게 멀게 느껴지는 예술입니다. 하지만 ‘호남의 감성으로 그리다’를 비롯한 선생님님의 저서들을 읽고 나면 사용된 기법, 작품의 예술성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하더라도 서화에 대해 한 층 친숙함을 가지게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서화 연구를 어떻게 시작하시나요?

-저는 미술사를 전공한 배경이 있기 때문에 회화 기법 혹은 문헌 연구 외에도 현장답사가 몸에 배어 있습니다. 물론 문헌을 통해 기본적인 것은 조사해 가지만 연구를 시작하면 현장답사부터 갑니다. 직접 가서 보면 느낌이 다르거든요.

단풍이 물든 유달산 앞에서 개최되고 있는 전남 국제 수묵 프레비엔날레.

어쩌면 저의 글이 한 화가와 그의 작품을 소개한다기보다 그 화가를 알아가는 과정, 어떻게 접근해야 그 화가에 다가갈 수 있을까에 대한 인간적인 고민이 담겨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대표적인 남도 화가인 김환기 화백의 푸른색, 그 느낌이 참 좋잖아요. 김환기 화백의 고향 신안 안좌도에 배를 타고 가는데 ‘아, 섬을 둘러싼 바다의 푸른빛이 김환기를 키워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이런 이야기들을 책에도 많이 썼을 거예요.

▲특히 선생님의 연구가 의미가 깊다고 생각했던 것은 개개의 서화가들을 개별적으로 조명한 것을 넘어 호남 예술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역 예술의 흐름 속에서 더 큰 시대적 흐름을 읽어내고 있는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남도 서화의 산실인 조선시대 운림산방의 화가들이 소치 허련, 의재 허백련, 남농 허건으로 이어지는 화맥을 짚어가다 보면 관념적인 이상향을 좇던 남송문인화에서 부터 남농 허건의 ‘목포일우’처럼 우리 주변을 그리는 사경(寫景)이 고개를 들던 시대적 조류가 그려집니다.

남농 허건과 의재 허백련에 얽힌 일화를 보더라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느냐 혹은 기존의 것을 지키느냐에 대한 모습이 그려집니다.

전남 국제 수묵 프레비엔날레 전시작품 ‘정겨운 시골 정취’

물론 추위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할만큼 지독한 가난 때문이기도 했지만 허건은 작품을 출품했을 때 입선하기 위해 일본식 채색 화풍을 익히게 됩니다.

수묵에서 채색으로 변하는 것이죠. 투명한 담채와 까슬까슬한 붓의 느낌을 살린 필묵법에서 물감을 발라 몽롱한 분위기를 내는 불투명한 채색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에 반해, 의재 허백련은 화풍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되자 아예 작품을 출품하지 않죠. 의재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아들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도 끝까지 창시개명을 거부할 만큼 민족의식이 투철했고, 그가 고수했던 전통은 바로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이었습니다.

남농 허건도 나중에는 예술적 전향에 대해 후회를 하고 예전의 전통적 화풍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둘을 절충해 ‘신남화’라는 화풍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전통적인 필묵법에 채색이 들어가고, 주변의 풍경을 그리는 그림으로 바뀌게 된 것이죠.

‘별이 빛나는 밤에’.

▲혹시 일제 강점기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유학을 가서 새로운 미술을 배워왔는데 그 중 서울 다음으로 전국에서 미술 유학생이 가장 많은 곳이 전라도였다는 것을 아셨나요?

-제가 서화와 함께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 인상주의를 한국 땅에 최초로 도입한 오지호, 우리나라 대표적 여성화가로 이름을 날린 천경자를 연결지어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유명한 현대 화가들이 우리 지역에서 나올 수 있었던 이유가 그들이 남도의 예술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예술세계가 동떨어진 것이 아니에요.

▲세계적 소통코드로서 ‘한국감성’이라는 기치 아래 남도 서화를 연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한국감성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작년까지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감성연구단에서 세계적 소통코드로서의 한국감성은 무엇인가를 연구를 했었는데요, 문·사·철, 예술 등 각 분야에서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감성이라고 하는 것은 보편적인 희로애락 외에도 시공간적 맥락에 따라 특수성을 가지게 됩니다.

조선시대 화가들도 그렇지만, 감성을 연구하면서 시대적으로 우리와 조금 더 맞닿아 있는 근대 화가 천경자, 김환기를 예로 들어, 분명히 이들의 예술적 감성의 자양분이 된 것은 남도의 들녘이고 고향일 것이라는 확신 같은 것이 생기게 됐어요.

천경자 그림의 화려한 색채와 그의 수필의 유려한 문장들에 고흥에서 보냈던 유년의 밝고 따뜻한 기억이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현재의 나를 이루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내 안에는 수천 년에 걸쳐 쌓인 음악과 미술이 있을 거예요. 예전부터 듣고 봤던 음악과 미술 안에는 우리가 ‘한국’이라 부르는 풍경과 기억이 서려있고요. 그래서 다시 보면 훨씬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죠. 이러한 것들이 한국감성을 이루고 있지 않을까요.

이수현<작가>

▲현재 전남 국제 수묵 프레비엔날레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전통적인 재료인 수묵을 주제로 국제적인 행사가 열리게 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의 것을 너무 도외시하고 살아왔어요. 그렇지만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성장을 했고, 그에 따라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내놓았을 때도 뒤떨어지지 않고 우수하다는 자긍심이 생겨났다고 생각해요.

국제 수묵비엔날레가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시점이 됐다고 생각해요. 이전까지는 서구 문화에 억눌려 있다가 이제는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거죠. 우리 미술이 ‘나’에 대한 눈을 뜬 것이라고 생각해요.

▲광주가 아닌 전남에서 수묵비엔날레를 개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전남 국제 수묵비엔날레의 의미에 대해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물론 ‘광주비엔날레가 있는데 왜 가까운 지역에서 비엔날레를 또 하냐’는 비판이 있지요. 하지만 전남 국제수묵비엔날레는 광주비엔날레와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광주비엔날레가 선도적이고 실험적인 현대 예술로 꾸려져 세계 미술의 조류를 보여준다면 전남 수묵비엔날레는 우리의 전통을 바탕으로 수묵화로서 새로운 예술을 선도해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만큼 수묵에서는 익숙하고 편안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현대 미술에서 수묵화가 설 자리를 잃었다는 얘기가 들려오지만 여전히 이 지역에 많은 화가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수묵비엔날레는 남도 서화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인정하는 큰 자리를 마련해줘 이들의 그림을 다른 사람들 앞에 전시하고 평가 받게 한다는 점에서 많은 의미를 가집니다.

수묵비엔날레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서화뿐만 아니라 수묵을 이용한 새로운 시도들도 펼쳐 보입니다.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품은 도전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러한 장을 마련함으로써 화가들이 새롭게 자신을 발전시켜나가는 기회가 돼 남도를 중심으로 다시 수묵화가 일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