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원형의 보고 '광주사직동'](18) 사직동의 미래 “사직동만의 고유한 도시재생사업 발굴해야”

2017년 11월 02일(목) 18:44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도시재생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고색창연한 사직동의 도시재생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광주매일신문 DB

오래된 것은 가치가 없다? 그동안 우리는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는 낡은 건물을 쓸어버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채우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 산업화 및 택지지구 조성 등 개발의 광풍은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이며 풀뿌리가 됐던 공동체 의식까지 모조리 휩쓸고 지나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도시재생이 다시 화두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과제에도 포함됐다. 구도심 공동화 문제를 도시재생이라는 새로운 접근법을 통해 해결해 보자는 취지다. 역사와 문화가 튼실하게 살아 있는 우리 광주 남구도 예외일 수 없다. 그중에서도 예스러운 정취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사직동의 도시재생.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가 숙제로 남아 있다. 국내·외 사례를 통해 사직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해 본다.

최영호 남구청장

▶물리적 도시재생 ‘No’…역사·문화자산 입혀야

사직동은 우리의 옛것과 일제 잔재문화, 일제에 항거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민족의 자긍이 함께 살아 숨 쉬는 동네이다.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사직단을 비롯해 한때 광주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동물원, 정상에서 광주시내 조망을 한꺼번에 둘러 볼 수 있는 팔각정, 일제 강점기 일제는 일본 왕실의 조상이나 고유 신앙의 대상을 신으로 해 강제참배를 강요했던 신사(神社)가 있던 곳을 새롭게 꾸민 광주공원도 있다.

평일 오후나 주말에 글 읽는 소리가 가득했던 광주향교를 비롯해 시인 김현승·이수복이 이곳에서 살며 시심을 일구기도 했던 곳이 사직동이다.

이 자체의 문화와 역사만으로도 각광받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반가운 소식은 최근 사직동 주민들 사이에서 변화의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재생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선비마을 사업 및 통기타 거리 사업 등 색다른 시도에 나서고 있는 이들이 늘고 있어서다.

사직동 도시재생 움직임은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방향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직동 지역의 가치가 뒷받침되지 않은 단순한 물리적 재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반드시 역사와 문화 자산이 결부된 도시재생을 통해 사직동의 새로운 성장 스토리를 엮어 나가야 한다.

▶리버풀, 빈곤도시서 유럽문화중심도시로

영국의 대표 항구도시인 리버풀. 비틀즈가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축구 종가답게 축구팀 리버풀FC로도 널리 알려진 도시다.

이곳 도시는 18-19세기 번영을 누렸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도시가 거의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한 체계적 대응이 미흡하고 지방정부의 잘못된 정책의사결정으로 인해 리버풀의 추락을 부채질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1954년 도시 노면전차(tram)의 철거, 낙관적인 인구성장 전망에 근거한 야심찬 도시재개발 정책 등이 포탄을 맞았다.

하지만 이 도시는 21세기 들어 다시 중흥기를 맞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버려진 항구와 문화유산을 도시재생에 적극 활용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대에 세워진 항구 건축물 중 가장 훌륭한 것으로 평가받은 앨버트 독은 리버풀 도시재생의 핵심으로 평가된다. 또 19세기 당시 지어졌던 항구 원형 모습을 유지한 채 비틀즈 스토리를 비롯해 영국의 대표적인 미술관 런던 테이트 모던의 분관인 테이트 리버풀, 해양박물관, 레스토랑, 호텔, 상점을 채워 상권을 일으켰다.

이처럼 리버풀은 역사만큼 쇠퇴의 흔적도 치명적이었으나, 방치되고 쓸모없던 공간과 인프라를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면서 그 정체성을 유지해 빈곤의 도시에서 유럽의 문화중심도시로 탈바꿈에 성공하게 된다.

특히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유산을 소중하게 보존하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해 영국 중앙정부와 유럽연합(EU)로부터 자금유치에 성공한 대표적 도시재생 사례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군산, 일제 잔재 관광자원으로 활용

1900년대 초부터 1945년에 이르는 일제 강점기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픈 역사다. 전라북도 군산은 일제 잔재의 유산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고, 식민시대 유산에 문화를 입혀 근대역사 중심도시로 새롭게 옷을 갈아입은 곳이다.

1899년 5월1일 군산항 개항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 발판이 됐고, 100여년이 지난 지금 군산시 장미동과 월명동, 신흥동 등 군산 내항 일대에는 일제 강점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 아픔의 역사를 담고 있는 유산을 영원히 볼 수 없도록 폐기하는 대신,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사고의 전환으로 관광도시로 군산경제의 중흥을 이끌고 있다.

특히 지난 2014년 62만명에 불과했던 군산의 연간 관광객수가 지난해에는 3배 이상으로 증가해 200만명을 넘어섰고, 올해는 3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군산이 이렇게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민·관이 동반 관계를 형성해 함께 해 왔기 때문이다.

군산시는 2008년부터 근대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에 뛰어 들었고, 군산항 일대에 산재한 근대 건축물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이 사업을 추진해 왔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우리의 것도 활용하지 못하면서 일본식 건물에 투자하느냐는 시민들의 반발도 없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오늘날 군산은 일제 강점기와 관련한 근대문화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특화된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지역색깔 살린 도시 재생이 중요하다

사직동에는 지역색깔을 살린 도시재생 사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시간은 멈추지 않고 지나가면서 새 역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직동은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역사와 유물, 성장을 뒷받침할 만한 스토리가 가득하다.

사직공원에 위치한 전통의 활터 관덕정이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고, 일제 강점기 애국애족을 위한 정신교육과 체력단련을 겸했던 광주 최초의 체육관으로 일제로부터 탄압을 받으면서도 민족정신을 지켜냈던 녹성구락부가 거의 원형그대로 보존돼 있다.

여기에 광주의 야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사직전망타워가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고,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했던 결코 잊어서는 안될 사직단도 품에 안고 있다.

영국 리버풀과 전라북도 군산 사례처럼 도시재생의 근간은 곳곳에 내재해 있는 역사·문화, 그리고 사람이다.

이를 근간으로 관광산업 및 교육 등에 접목해야 도시재생 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주민과 전문가, 공공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야 하는 협력관계 구축이다. 도시재생은 빨리 성과를 보려고 하면 십중팔구 실패한다.

당장 2-3년 등 짧은 기간 내에 가시적 성과에 연연하게 되면 마을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체질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만의 고유한 도시재생 사업의 유형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동반 관계가 매우 중요하며, 민·관·전문가들도 천편일률적인 것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사직동 도시재생 사업은 이제 갓 태어난 신생아의 첫 울음소리처럼 이제부터가 시작단계이다. 꼬마 아이가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와 세월이 필요하듯 사직동 마을 주민들도 성급함 대신 꾸준하게 마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풀어나간다면 사직동의 옛 명성 찾기는 쉽게 풀릴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