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취가정 취가 (醉歌亭 醉歌) 시조 박정호

2017년 11월 06일(월) 19:35

비틀걸음으로 한번쯤은
흔들리고 싶었느니라.

부러지고 휘어지는 것이 목숨이거늘 소나무처럼 청정할 수만 있으랴. 천하에 부끄럽지 않은 이는 누구였을까? 만강(萬江)을 굽이쳐 살과 피를 나눠 풀숲에 돌 틈에 스며들고 남아 허공에 흩뿌려져 이 땅을 살찌운 저 이름 없는 민초들의 뿌리 뽑힌 하늘 아래, 맨 정신으로 건널 수 없는 시대의 질곡을 서슬처럼 쪼개 가신 이의 꾸지람이 두려워 취하지 않고 어찌 견딜 것이며 잠을 부를 수 있겠는가. 천둥소리인지 호통소리인지 먹먹한 몸의 통증에 꺼이꺼이 끄덕이는 몸짓으로 흔들리고 싶었다 한번쯤은, 그래도 좋으리라. 물소리 저며 어둠을 짚어가며 빈한한 몰골로 건들건들 건들바람에 휘었다가 일어서는 대나무는 아니더라도 싸리나무처럼은 살아야지. 덤벼들 듯 다가서면 멀어지는 길 끝에서

모나서 깨진 가슴이 파닥이고 있다
비틀걸음으로 한번쯤은 흔들리고 싶었느니라.

<해설> 옛 선비들은 어떤 심정으로 세상을 살았을까? 까마득히 오래 전 세월을 더듬어 당대의 애환을 가슴으로 느끼기에는 현대문명이 너무도 딴판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그리고 유전공학이 하루가 다르게 우리의 삶을 바꿔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옛 것에 마음을 두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문명이 급류처럼 속절없이 요동치더라도 인간의 희로애락은 변하지 않고 유장하게 흐른다. 한마당 판소리를 듣듯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애절함이 여운처럼 남는다.

<약력> 시조문학 추천완료(1988), 한국시조시인협회,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광주문인협회 회원, ‘역류’, ‘율격’ 동인, 현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