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이들 왜 불안할까 조영환 |
| 2017년 12월 05일(화) 18: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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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지인이었다. 당장 차에서 내려 학생들에게 어느 학교 다니느냐, 몇 학년이냐, 이래서 되겠느냐 등등의 얘기를 늘어 놓았지만, 학생들은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냐는 눈빛으로 건성으로 듣는다.
뭔가 권위를 가지고 학생들을 훈계할 필요를 느낀 지인은 “내가 과외하는 학생도 너희 학교 선배인데”하며 운을 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왜 상관 하는가요?”였다. 순간 헷갈린 그는 당돌한 고등학생들 앞에서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
시대가 바뀌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이 어른들에게 혼나던 시절은 갔다.
공동체나 교사, 부모의 권위는 예전만 못하며 그와 관련된 각종 사회적 관습이나 규제들도 그 힘을 잃어 간다.
이런 후기 산업사회의 특징은 개인을 훨씬 더 불안하게 한다고 한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불안의 이유로 지목한 것들은 핵이나 테러, 바이러스의 위협이 아니었다. 대부분 사람은 고독,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집단이 기대하는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동조의 압력 그리고 저마다 느끼는 ‘고향에 대한 상실감’으로 불안해 졌다.
왜 그럴까? 삶의 지침들을 제공해 주던 과거의 가족과 종교, 국가의 권위가 부재한 가운데 개인은 삶의 본보기를 찾지 못한 채 항상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경제는 언제나 위기고,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며, 각종 질병이 우리를 노리고, 어린이집 폭행은 내 아이의 일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예의 ‘진정한 자아’라는게 이 시대에는 존재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자신만의 개성과 정체성, 이미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유행하는 스타일이나 최근에 주목받는 어떤 인간형의 모방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다.
삶의 의미를 찾고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여행이라는 콘셉트로 유행하고 있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1개월 걷는 것)이 여행 상품으로 대박을 치는 아이러니를 생각해보라.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다른 사람처럼’ 여행 상품을 택해 거액의 돈을 지급하고 사람들 틈에 끼어 순례 길을 걸어야 한다니.
소비 자본주의와 미디어는 불안한 주체에게 호감 가는 이미지로, 더 받아들여질 만한 정체성으로 자신을 창조하라고 요구한다.
결국 이러한 조언들은 결국 ‘생존’이라는 이 시대의 화두로 귀결된다.
사회생활을 위한 적절한 패션 감각, 어느 정도의 유머 감각, 인맥 관리는 필수이며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자녀와의 대화법, 자녀의 창의성을 길러 주는 독서 교육도 우리의 몫이지만, 자본주의는 이렇게 사회에서 내가 어떻게 보이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사람들은 불안하다. 가족이 해체될까 봐, 직장에서 낙오될까 봐, 결혼을 못 할까 봐, 외로워질까 봐, 아이가 잘못될까 봐, 불안을 잊고 다른 데 주의를 돌리기 위한 주체의 필사적인 노력은 과도한 노동이나 여가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의식적으로 불안을 없애려고 노력할수록 오히려 불안은 가중된다는 데 있다.
주체가 불안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결핍과 사회의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즉 불안은 현대를 사는 주체에게는 불가피한 감정이며 오히려 그것을 손쉽게 없애려는 방법들이 그를 더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자주 불안하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염려는 늘 우리를 따라다닌다. 신앙인이라고 불안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불안은 우리에게 죄책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통해서 불안을 잊기도 하지만 불안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기도 한다.
집을 도망쳐 나와 지칠 대로 지쳐 돌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던 야곱은 불안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이다.
유연하고 연약한 우리가 불안을 모른 채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따라서 신앙인이 불안할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젊은이들 불안을 지혜롭게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