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ssnam48@kjdaily.com

2017년 12월 13일(수) 18:30

필자는 요 며칠 ‘내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을 한 아주대병원 이국종교수 말을 몇 번인가 되씹어보았다. 귀순한 북한 병사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상황이 이국종 교수에게 쏠리자 기자회견 과정에서 한 말이다. 사고나 사건에서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골든아워’는 중증외상환자에게는 금쪽같은 시간으로 환자의 생사를 결정짓는 귀중한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수술 하는 분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고백하는 것은 충격이다.

의사로서 사명감이 남달랐던 이국종 교수는 다른 사람의 건강을 위해 정작 자신은 과로로 한쪽 눈이 거의 실명 상태라고 한다. 생명을 다투는 절실함과 의사에게 매달리며 호소하는 간절한 가족들을 보면서 “외과 의사는 다른 의사들보다 수명이 길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는 이국종 교수의 남은 시간은 환자를 볼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

그러면, 보통사람인 국민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50대인 필자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생각해봤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생명표’에 따르면 작년 출생아를 기준으로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여자 85.4년, 남자 79.3년이었다. 65세 기준 한국 노인의 기대 여명도 여자 22.6년, 남자 18.4년으로 OECD 평균(여자 21.1년, 남자 17.9년)보다 각각 1.5년, 0.5년 길었다. 이 기준으로 필자의 기대여명은 32년 이상이다.

그러면 앞으로 32년 어떻게 살 것인가. 대한민국 초고령사회에 편승하면서 그 많은 노인들과 함께 어떻게 32년을 꾸려갈 것인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현재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를 넘어 우리나라도 ‘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그 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7% 이상 14% 미만인 ‘고령화 사회’였다. 그러나 현재 추세로 2025년이 되면 65세 이상 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평균 수명이 47세였던 조선시대에는 61세 회갑을 넘기는 것이 큰 축복이어서 회갑잔치를 성대하게 했지만 요즘 회갑 쇠는 사람 거의 없을 정도로 61세를 넘기는 것은 보편적이다. 옛날보다 30~40년 오래 산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채 수명만 급속히 늘어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66~75세’ 42.7%, ‘76세 이상’ 60.2%로 전체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다. 빈곤에 처한 노인들은 안정적 노후생활은 고사하고 몸이 아파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고독사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2015년 현재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10만 명당 58.6명으로 전체 자살률(26.5명)의 2배가 넘는다. OECD 회원국 평균의 3배에 달한다.

국가가 노후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50대에 일손을 놓고 20년 이상 노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차라리 고통이다. 연금 부담이 늘어나니까 국가도 고통스런 일이고 노인 서너명을 위한 각종 사회비용을 젊은이 한 명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젊은이들로서도 힘겨운 일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무엇보다도 노령층 노동력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각종 제도 및 시스템 정비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모든 일터의 정년 연장이나 파트 타임을 확대하는 일 뿐만 아니라 이들 ‘숙련공’들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산업 구조를 전반적으로 고급화하는 일 등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노인 복지 향상 대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 일들은 노인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노후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일상에서 심리적으로 편치 못한 청장년층 등을 위한 일이며 결국 커다란 국가적 과제 하나를 풀어나가는 길이다.

초고령사회의 일원이 되는 필자는 지금부터 고령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장기계획을 세울 생각이다. 고령에 진입하는 국민이 미리 노령시간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고 저소득층 경우 국가가 안정적인 보호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많은 노인들이 매일매일의 삶이 고단해 ‘죽지 못해’ 산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마지못해 삶을 이어가는 노령의 삶은 불행하다. 일찌감치 일자리에서 내몰려 축적해 놓은 재산도 없이 가정과 사회에서는 냉대를 받고 사회 복지마저 혜택을 못 받는 이들은 삶이 지옥이다. 저소득층 노인들의 경우는 각종 질병에 시달려도 돌봐주는 곳 없이 근근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정말 ‘죽지 못해’ 사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개인도 국가도 불행하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대한민국 경제는 불과 10년 뒤에 0% 성장률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단언컨대, 지금 대한민국 최우선 국정과제는 고령화와 저출산인 것 같다. 지난 10년 동안 저출산 고령화 해결을 위해 100조원 넘는 혈세를 투입했다. 실패다. 그동안 수백가지 아이디어를 내서 100조원을 투입한 애를 더 낳게 하기 위한 전략은 실패했다. 노인자살율이 높아지는 것 보면 고령대책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할 때다. 지금까지는 가정을 중심으로 노인의 문제를 해결해 왔다. 앞으로는 구조적으로 대안을 찾아야 한다. 가정을 중심으로 정부와 단체가 협력하는 팀 어프로치 형태의 구조적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요양서비스도 과도기인 현재는 시설 위주로 진행되고 있지만 수급자가 많아지면 재가서비스가 효율적일 수 있다. 이에 대한 제도적인 준비도 필요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