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희정의 책 읽기 삶 읽기]종이새와 개새끼 |
| 2017년 12월 13일(수) 1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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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아는 사람만이 자녀들이 헛것을 추구하지 않도록 지켜준다. 자녀는 부모 서재의 공동 주인이 된다. 자녀는 정신을 연마하는 잔잔한 과정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그리하여 어린 영혼은 낮의 야만 뒤의 밤의 고요를 배우고, 홀로 남겨지는 두려움을 넘어서는 법과 개인의 값진 고독을 터득해 내면의 창조성을 일깨운다. 매장된 자아는 잠에서 깨어나 확고해지며 자유로워진다. 자녀는 종내 새가 돼 날아오른다. 이 모든 것이 서재에서 이뤄진다.
책은 은밀한 세계와 독자를 잇는 헤르메스다. 헤르메스는 선대와 후대, 작가와 독자, 정신과 정신 사이를 날아다닌다. 읽던 책을 들어올려 공중에 펼쳐본다. 펄럭거리는 책장은 양 날개가 돼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눈앞에서 춤춘다. 내게 포획된 책에 집중하며 나는 자유로운 비상을 훈련한다.
더 정확히는, 얌전한 책이 민감하고 주의깊은 독자를 만나 새가 돼 솟구친다. 새가 낳은 새가, 새를 낳을 새를 만났다.
서재는 새들의 착종이다. 새들의 깊고 오랜 교제는 새로운 새들을 잉태한다. 긴 수태기 끝에 아름다운 새가 탄생할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새들이 한꺼번에 서식하는 서재.
엄격하게 정돈된(그러나 새들의 날개짓들로 소란한) 내 서재에 들어앉는다. 책을 펴고 몰두한다. 나는 작가의 위엄과 권위에 순종하는가? 아뿔사, 종이새가 날아들었다. 새떼들이 나를 덮친다! 굶주린 새들은 내 영혼과 정신을 아귀아귀 파먹는다. 나는 전율하며 쓰러진다. 비상의 동력을 얻은 종이새는 다른 먹이를 향해 날아간다. 이쯤에서 걸귀는 나인가, 책인가. 수용자는 독자인가, 작가인가.
가사의 책은 창조적인 독자의 발견으로 생명을 얻는다. 능력있는 독자는 책을 읽고나서 읽기 전과 달라진다. 올바른(그러나 순수하지 않은) 독서는 책의 갱생과 독자의 도약으로 이어진다.
일방적인 순종이란 없다. 그러므로 작가 이인성이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에게 눈을 감으라 명령한 뒤, 눈 뜬 독자에게 퍼붓는 “개새끼”는 욕설이 아니라 칭찬이다.
당연한듯 휩쓸려가기보다 차라리 작가를 의도적으로 거스르면서까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독자의 모습을 우리는 역설적이며 극단적인 욕설에서 예감한다.
물론, 텍스트를 마주한 독자의 바람직한 길항은 작가에 대한 맹목적 순응이 아니요, 맹목적인 거부도 아니다. 텍스트를 매개로 독자와 작가는 끊임없이 대화하고, 서로 상대를 통해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이로써 텍스트 역시 가둬진 틀에서 해방된다.
거듭 말하지만, 책을 해석하는 것은 독자의 능력과 창조성이다. 독자의 예리한 긴장은 책에 숨을 불어 넣는다. 당연하게도, 독자는 책으로 창조적 날을 벼린다. 단지 새로운 것은 유치할 뿐이며, 창조는 기나긴 훈련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오랜 세월 독서로 예민한 감수성과 집중력을 연마한 독자는 소설에 주제를 부여한다. 진정한 작가는 유능한 독자를 끌어안는다.
개새끼의 창조적인 독서는 완독후 개새끼 스스로를 ‘실오라기 만큼’ 변화시키며, 책도 천재적인 반열로 올려놓는다. 종이새는 새로운 개새끼들을 향해 퍼진다. 개새끼는 저항하듯 짖어대고, 종이새는 멀리멀리 날아간다. 이렇게 감염은 전염된다. 이인성의 ‘당신에 대해서’는 독서윤리를 제시한다.
작가의 포용, 독자의 능력, 서재의 가치, 텍스트의 부활…나는 독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있다. 내 글의 독자 입장에선 메타독서를 하는 것이 되겠다.
이 짧은 글 역시 창조적인 개새끼를 만나 종이새로 거듭나기를 꿈꾼다. 아니다. 영생을 위해 숨어있는 개새끼를 찾아 내 글이 스스로 솟구친다. 그리하여 메타메타독서, 메타메타메타독서가 줄지어 출현한다.
고요한 서재는 나로 인한 당신의 탄생, 당신에 의한 나의 존재의 출발점이다. 서재 문을 연다. 무한한 해방과 비상을 품은 곳. 내가 날아오르고, 텍스트가 솟구치고, 멀리있는 당신이 날아오를 것이다. 서재 한쪽 구석에 자리잡는다.
당신의 나는 나의 당신을 지금 만나러 간다. 내 참다운 당신들이 너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