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고창 질마재길 고인돌·질마재따라 100리길 3코스 |
| 2018년 01월 16일(화) 18: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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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갈대숲은 엄동설한에도 꽃을 떨구지 않고 햇빛방향에 따라 은빛으로 반짝이기도 하고, 갈색물결을 이루기도 한다. 역광에 비친 은빛 갈대는 우아하고, 갈색의 갈대에서는 세월이 만들어준 경륜이 느껴진다. 함께 걷고 있는 일행들의 모습이 왕성한 활동 후에야 꽃을 피운 갈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과 비교하면 패기는 떨어지지만 경륜이 만들어준 지혜로 하여금 세상을 살맛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에스키모 집 같은 외형을 하고 있는 골든캐슬 팬션이 강변에 줄줄이 서 있다. 골든캐슬에서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임도는 고인돌·질마재따라 100리길 2코스이고, 3코스인 질마재길은 여기에서 산비탈로 올라선다. 가파른 산비탈에는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잎을 떨군 활엽수들이 더불어 숲을 이루며 함께 매서운 겨울을 견디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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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자리를 잡은 소요사가 바라보인다.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산비탈에 둥지를 튼 모습이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소요사로 오르는 임도와 갈림길이 있는 고개에 사각정자가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한다. 추운 날씨에 보온병에 담아 온 따뜻한 물 한잔이 몸과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 소요사 입구 쉼터에서 질마재 쪽으로 걷는데 동쪽으로 멀리 내장산이 바라보인다.
이 길에서 선운리로 넘어가는 낮은 고개를 질마재라 한다. ‘질마’는 소나 말의 안장을 뜻하는 ‘길마’의 사투리다. 옛날 소금농사를 짓는 바닷가 심원마을 사람들은 부안면 알뫼장터에서 곡물과 교환하기 위해 좌치나루터를 거쳐 이 고개를 넘었다. 서정주 시인의 ‘질마재 신화’라는 시로 인해 질마재는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됐다.
질마재에서 선운리로 내려가는 옛길 주변의 울창한 숲에서는 추위를 이기고 있는 새들이 길손들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미당선생도 이 길을 걸으며 시적 상상력을 키워나갔을지도 모른다. 숲길을 벗어나 포장된 도로로 내려서니 조그마한 저수지가 기다리고 있다. 선운리 들판과 변산반도에 솟은 내변산이 펼쳐지고, 곰소만에는 갯벌이 드러나 있다. 서쪽 멀리 한 척의 커다란 배처럼 떠 있는 위도가 바라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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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서정주가 태어난 진마마을에 도착하니 미당생가와 미당시문학관으로 가는 이정표가 길안내를 자처한다. 미당생가로 가기 전 도깨비집이라 쓰인 초가집이 관심을 끈다. 미당 선생은 ‘질마재 신화’에서 말피 도깨비와 부자가 된 설막동이네를 소재로 시를 썼는데, 이 도깨비집은 시 속의 도깨비집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도깨비집에서 마을 골목을 따라 내려가면 미당 선생이 태어난 생가가 나온다. 미당은 이곳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에서 1915년 태어났다. 동양적인 내면과 감성의 세계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고전적인 절제의 경지를 보여줬다고 평가받는 그의 시는 우리의 민족정서와 선율을 잘 드러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미당은 ‘화사집’, ‘신라초’, ‘질마재 신화’ 등 15권의 시집과 1천여 편의 시를 남겼다.
하지만 미당은 일제 말기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학도병 지원을 독려하는 시를 게재하는 등 친일시인이라는 오명은 남겼다. 1980년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 생일잔치에서 낭독했다는 ‘전두환 대통력 각하 제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등 군부독재에 편승한 행적 역시 시인의 어두운 그림자다. 미당의 문학적 재능이 친일과 친독재로 얼룩지지 않고 한국 문학에 오롯이 환원됐더라면 정말로 한국 문학계의 큰 자산으로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시인이 됐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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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운동장과 담쟁이 덮인 옛날 교문을 바라보고 있으니 천진난만하게 뛰어놀던 어린이들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미당 생가마을을 벗어나니 발 아래로 너른 들판과 곰소만이 펼쳐지고, 그 뒤로 아기자기하게 솟은 내변산 줄기들이 병풍을 둘러놓은 것 같다. 아래로 펼쳐지는 넓은 농경지는 간척을 통해 만들어진 논이다. 흙을 드러낸 텅 빈 들판 위로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다.
길은 죽염공장을 지나 강변 산길로 이어진다. 숲길 아래로는 곰소만에 합류되기 직전 마지막 강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인천강이 흐른다. 바다와 만나는 지점이라 강변은 갯벌을 이루고 있다. 숲길을 걷고 있으면 강바람이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걸어온다. 좁은 산길은 차츰 수로 옆 넓은 길과 이어지고, 다시 강변 논길에 닿게 된다. 인천강변 농로는 연기마을 앞 정자나무까지 이어진다.
연기마을 골목길을 걸으며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살아있으므로 저것이 살아있다’는 불교의 연기론(緣起論)을 생각한다. 당신이 있어 내가 있고, 뭇 생명이 살아있어 인간도 살아있다.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은 여전히 말이 없다.
※사진설명
▶고인돌·질마재따라 100리길 3코스(질마재길)는 골든캐슬팬션→꽃무릇쉼터→연기저수지→소요사입구→서당골→미당시문학관→연기마을→풍천까지 11.6㎞로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선운사 입구 풍천에 차량을 주차하고 인천강을 건너 강변을 따라 골든캐슬까지 1㎞를 걸어야 질마재길 초입을 만난다.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선운사 입구 풍천(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8)
▶선운사 입구 풍천에는 민물장어요리를 판매하는 식당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