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정부여, 이 약 한번 써보셔요 나의갑 |
| 2018년 01월 21일(일) 18:10 |
|
갈망의 모태는 고통이다. 고흐한테 다른 이름을 지어준다면 ‘고통’이란 이름표를 달아주고 싶다. 스물일곱이 되도록 그는 떠다녔다. 화랑 점원을 시작으로 교회 부속학교 보조교사, 책방 점원, 신학교 준비생, 탄광촌 등으로. 지금의 ‘알바생’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이후 독학으로 그림을 하면서 화구상인 동생 테오에 얹혀살다시피 했다. 젊음이 저물도록 부모에 기대어 사는 오늘의 ‘취준생’과 동급생인 셈이다. 그는 생전에 단 한 점밖에 그림을 팔지 못했다. ‘아를의 붉은 포도밭’. 그의 가난을 대표하는 사건이 이거다. ‘일(그림)’은 하늘만큼 땅만큼 했지만, ‘벌이’는 빈손이었다. ‘낡은 구두’에서도 그의 남루는 잘 드러난다. 그럼에도 그는 테오한테 띄운 편지에서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고 예술혼을 피어 올린다.
아담과 이브라는 종교적 사람은 천국에서 쫓겨나기 전에는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었다. 바이블(Bible)에 뱀의 유혹, 금지된 선악과 열매 어쩌고 적혀 있는데, 놀고먹는 일상이 송구스러워 이브가 뱀의 유혹에 부러 넘어갔지 않느냐는, 말이 될 거 같은 생각이 풀쑥 기어나온다.
얼마 전 공직에 나간 아들이 저녁 식탁에서 신나게 쏘아올린 취업담을 듣고 아버지는 죄라도 진 듯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아빠, 이젠 사흘 밤낮을 먹지도 말고 자지도 말고 끙끙 일만해라 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견뎌낼 수 있을 거 같아요. 취준생 시절과 비교하면 참말이지 놀고먹기죠.”
고흐의 ‘낡은 구두’ 같은, 아담과 이브의 ‘놀고먹기’ 같은 고통을 짊어진 채 이 땅위에 흐린 모습으로 서 있는 ‘일이 없는 이들’. 지난 1월10일 한 일간지가 통계청 ‘2017년 연간 고용동향’을 인용해 “2017년 청년실업률은 9.9%, 전체 실업자 수는 102만8천명에 달했다. 이는 지금 기준으로 통계를 만들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최고치다”고 보도했다. 이 대목에 이르러, ‘님을 위한 행진곡’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와 겹쳐진 건 왜인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일자리 상황판’ 설치이고,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까지 떴는데도 성적표가 좋지 않음이라니, ‘깃발만 나부껴’ 하고 웅얼거릴 수밖에.
생각을 바꾸면 성공이 보인다고 했다. 일자리 만들기라는 것, 젤 만만한 공무원 늘리기에만 기댈 것도 아니다. 노·사·민·정의 사회적 대타협이 요구되는 기업 쪽만 채근할 일도 아니다. 정부가 다스리는 공공기관 쪽은 어찌해 피해가는가? 그 수장 또는 고위 간부의 경우 거개가 2모작에서 3-4모작까지 하는 사람들이다. ‘국민에 봉사’를 입에 달고 다니는 그 사람들, 그들의 급여를 쪼개 일자리 없는 젊은이들과 나눠 쓰자는 주문이다. 그 쪼갠 돈으로 그 조직에 젊은 일꾼들을 뽑아 쓰자는 얘기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게 그들의 ‘국민에 봉사’다. 급여 규정 등을 고쳐 대통령이 결단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며, 기업 쪽의 마음을 바꿔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작년에 기획재정부장관이 지정한 정부 공공기관이 모두 330개에 이른다 하지 않은가.
물론, 이 발상은 ‘광주형 일자리’에서 따왔다. 노동자들의 임금을 현대·기아자동차 절반 수준인 4천만원대로 낮추자는 것이 ‘광주형 일자리’의 고갱이다. 그럴 경우 일자리를 두 배로 늘릴 수 있다는 산술이다.
광주도 이 길을 가야 한다. 5·18기록관장인 내 급여를 4천만원대로 깎아주고 그 남은 돈으로 학예연구사 한 명을 새로 뽑게 해주면 좋겠다. 나 또한 2모작 아닌가.
2014년 3월 어느 날, 갑자기 후보가 증발되어 버렸다. 출마기자회견을 며칠 앞둔 긴박한 상황이었다. 캠프가 발칵 뒤집혔다. 비행기 속이라며 전화가 왔다. 박병규 전 기아차 광주공장 노조위원장(현 광주시 경제부시장)과 단둘이서 벼락행보를 한 곳은 벤츠와 포르셰자동차로 유명한 독일 슈투트가르트. ‘광주형 일자리’는 그렇게 태어났고,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신년 인사회에서 윤장현 시장에게 “광주형 일자리, 빨리 성공시킵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