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눈으로 상상 속 세상을 펼치다 광주 출신 소영일 前 연세대 교수 제2회 개인전 21-27일 서울 인사동 인영갤러리 시력 악화…돋보기 놓고 그림 그려 이야기 담긴 회화 작품 25점 선봬 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

2018년 02월 19일(월) 18:21

소영일 作 ‘초콜릿 동산’ /작가 제공

‘나는 초콜릿 동산의 낭만적인 전설이 마음에 들어 이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이 그림에서 주인공은 물론 초콜릿 동산인데, 나는 이 동산들의 색깔을 어떻게 묘사하면 좋을 것인가로 고민했다. 원래의 색깔대로 갈색(brown)으로 할까 아니면 다른 색으로 표현할까 하는 문제였다.’

소영일(67) 작가의 작품 ‘초콜릿 동산’(보홀, 필리핀)에 대한 이야기다. 이처럼 작가는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 색깔과 구도에 대한 본인의 심오한 고찰이 담겨 있다. 30여년간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이력을 그대로 담고 있듯, 작품 하나하나 낱낱이 분석하고 관람자가 알기 쉽게 적어 뒀다.

소 작가는 21-27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영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영혼을 맑게 해 주는 아름답고 놀라운 세계 그림 여행(Ⅱ)’을 주제로 하는 이 전시는 지난해 8월 첫 개인전 이후 두 번째 전시다.

소영일 작가.

광주 출생으로 광주제일고를 나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소 작가는 제23회 행정고시,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 국무총리실 행정사무관, 연세대 교수 등 다양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 많은 수식어들을 갖기 위해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앞서 나갔던 탓일까. 소 작가의 시력은 10년 전부터 서서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녹내장 때문에 10여년 전부터 눈이 잘 안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눈에 이상이 생겨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죠. ‘시력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포기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한 곳에 10분만 집중해도 눈이 시리고 눈물이 쏟아져요. 그래도 더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걸고 한번 그림에 빠져보자’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젊은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미치도록 좋아했던 탓에 한참 독학도 했었다. 삽화를 그리겠다고 뉴욕타임즈에 나온 삽화를 수백, 수천장 따라 그리는가 하면, 만화 그리기에 빠져 일본에서 공수해 온 만화만도 수백권이 넘는다.

대학교수로 일하면서도 오롯이 열정 하나 만으로 홍익대 대학원 미술교육과에 진학하기도 했다. 수채화, 유화, 데생 등 닥치는 대로 그려 나갔다.

잘 보이지 않는 눈 때문에 돋보기를 놓고 작업을 하지만, 작가의 작품은 정말 맑고 순수하다. 실제로 작가가 여행하면서 눈에 담았던 세계 곳곳을 소재로 하며, 때로는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곳들도 그린다. 동화 작가를 꿈꾸며 작가가 상상한 이미지들을 캔버스에 풀어내기도 한다. 전시에선 지난 6개월간 매진한 신작 25점을 만나볼 수 있다.

작가는 누구보다 초조하고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에 임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잘 보이지 않는 눈 때문에, 언제 그림을 못 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을 날이 두려워 6개월 마다 개인전을 열 계획입니다. 오는 8월 세 번째 개인전을 목표로 벌써부터 준비에 들어갔어요. 이제는 학창시절 배웠던 시나 가곡 속 도시들을 그림에 그리고 싶어요. ‘라 팔로마’, ‘돌아오라 소렌토로’ 등에 등장하는 지역들 말이죠. 지금은 풍경을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추상화를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전시 문의 02-722-8877)/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