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없는’ 쓸쓸한 대학 졸업식 경기침체·취업난 영향…졸업생 참석 줄어 화훼·사진 등 대목 노린 상인들 ‘긴 한숨’ 임후성 기자 uyear@kjdaily.com

2018년 02월 22일(목) 19:39

‘오지 않는 주인’을 학사모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취업을 하지 못해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졸업장과 졸업앨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왔어요.”

경기침체 장기화와 극심한 취업난으로 광주지역 상당수 대학생들이 쓸쓸한 ‘졸업식’을 맞이했다.

22일 오전 광주 한 대학교. 단과대학과 대학원 졸업식이 열렸다. 하지만 졸업생과 가족, 친구들이 북적여야 할 졸업식이 예년에 비해 썰렁함 그 자체였다.

가족들 없이 친구들과 조용히 사진을 찍거나 혼자 와서 몰래 졸업장만 들고 황급히 자리를 뜨는 졸업생들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이처럼 졸업식 풍경이 바뀐 것은 극심한 취업난으로 졸업을 유예하는 학생과 타지역으로 떠나는 학생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 대학교 대다수 학과의 경우 졸업생들 절반 가량이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A학과는 72명의 학생이 졸업하지만 절반 가까운 30명이 참석하지 않았고, B학과는 134명 중 43명이 불참했다. 심지어 16명 졸업하는 C학과에는 5명만이 학사모를 쓰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학과실에는 주인을 잃은 학사복과 학사모, 졸업장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졸업생 이모(24·여)씨는 “취업을 하지 못해 오지 말까하다가 언젠가 찾아야 하는 졸업장 때문에 할 수 없이 졸업식에 오게 됐다”며 “친구들도 대부분 취업 준비 중이라 졸업식에 가지 않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날 발걸음이 무거웠다”고 말했다.

여자친구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김모(27)씨는 “여자친구가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우기는 것을 겨우 설득했다”면서 “나 역시 졸업을 못한 졸업유예생이어서 함께 찍은 졸업 기념사진에는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고 귀띔했다.

졸업생들이 줄다 보니 대목을 노린 상인들도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다.

이른 아침부터 노점상을 꾸린 한 화훼 상인은 “해당 대학 졸업식에 10년 가까이 오고 있지만 2-3년 전부터 사람이 많지 않은 분위기”라며 “꽃다발을 지난해 졸업식보다 조금 준비했는데도 몇 개 나가지 않아 예쁜 꽃들을 어떻게 처리를 해야할 지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사진을 찍어주는 상인도 상황은 비슷했다.

‘사진촬영’이라고 적힌 깃발을 든 상인은 “졸업생도 많이 줄었지만 축하해주는 분위기도 많이 사라진 것 같다”며 “기념하는 사진이지만 취업이 어려운 데다 불경기까지 더해 사진은 더욱이 찬밥신세가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올해 광주지역에서 졸업유예를 신청한 대학생은 전남대 428명을 비롯해 조선대 383명, 광주대 93명, 호남대 56명, 남부대 38명 등으로 확인됐다.

/임후성 기자 uyear@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