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수영복을 입고 있는가? 박대우 |
| 2018년 05월 10일(목) 18: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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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분단의 아픔이 흐르는 도보다리 위를 걷는 모습은 생중계를 지켜보는 지구촌 모든 이들에게 전율이 흐를 정도의 감동으로 다가왔으리라. 이후로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긴박한 외교회담, 일본의 태도변화를 보며 그동안 꽁꽁 얼어붙어있던 한반도에 분명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의 국운이 상승하고 있음을 알리는 반가운 신호. 하지만 반갑지 않은 또 하나의 신호가 느껴진다. 지구촌에 흘러넘치던 유동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지표가 그것이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앞 다퉈 유동성을 공급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누려왔던 파티가 이제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기축통화의 이점을 살려 천문학적인 금액의 달러를 공급하던 미국이 금리 인상을 통해 경제정책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으며 미국발 찬바람에 가장 먼저 아르헨티나가 재채기를 시작했다.
그냥 재채기로만 치부하기엔 그 증상이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버텨주던 환율이 3일에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페소화 가치가 급락하자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지난달 말부터 세 차례나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그렇지 않아도 27.25%로 높은 기준금리를 40.0%로 올리는 긴급 처방을 통해 유동성 유출을 막아보려 하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는 시각이 우세하다. 기준 금리 40%는 수치상으로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아침, 결국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협상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터키 중앙은행도 지난달 말 0.75%포인트의 금리인상을 단행했지만 이미 발동이 걸린 통화 가치 하락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 모양새다. 리라화 가치는 연초 보다 무려 10%가 넘게 떨어졌고 급기야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터키의 신용등급을 강등하기에 이르렀다.
경제적 펀더멘털이 이들 국가와는 다르게 평가받고 있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금리 움직임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NH농협은행은 8일부터 혼합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연 3.67%부터 5.01%까지로 적용했다. 주요 시중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이 5%를 넘은 것은 지난 3월 16일 이후 약 두 달 만이다. 다른 은행 금리도 5%에 근접했다. 보통 가산금리가 오르면 대출 금리도 따라 오른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이 은행의 가산 금리로 인한 수익을 문제 삼으면서 일부 은행은 당국의 눈치를 보며 가산 금리를 낮추고 있다. 결과적으로 가산 금리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오히려 내렸는데도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5%를 넘은 것은 대출의 기준이 되는 금리가 빠르게 치솟고 있어서다. 더구나 미국의 추가적인 금리인상이 예상되는 만큼 국내 은행들의 대출 금리도 오를 가능성이 더 크다.
글로벌 경제를 좌우할 수 있는 또 다른 변수는 국제유가의 불안정이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핵 합의를 둘러싼 갈등을 비롯해서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유가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유가 상승은 미국의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고, 금리 인상 속도를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만약 미국이 금리 인상과 횟수를 늘리는 등 긴축 강화를 공식화할 경우에는 신흥국 시장의 자금 유출이 급속도로 빨라질 것이다. 이에 따라 통화가치가 급락하는 ‘긴축발작(Taper Tantrum)’이 재연될 수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은 남북 관계 개선 등의 영향으로 달러 강세 영향권에서 일정 부분 비껴나 있고 외국인 자금 유출 움직임도 크지 않아 당장 큰 악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가 상승 역시도 산유국에 대한 수출 확대 등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리인상, 유가 불안정과 함께 이미 시작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격렬해지고 각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는 가운데 신흥국 시장까지 축소되면 기업들의 수출에 적잖은 타격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갈수록 한·미간 금리 격차가 벌어지고 이윤을 추구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회수가 이어진다면 결국엔 우리나라도 격랑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특히 수출중심의 우리나라는 미국 연준(Fed)의 예상보다 빠른 금리인상 뿐만이 아니라 높아지는 무역장벽, 가계부채 누적, 주택시장의 변화 등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은 과제를 앞에 두고 있다. 무엇보다도 금융을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는 21세기 세계 경제 속에서 유동성으로 흘러넘치던 경기부양의 마무리 국면과 함께 선진국의 통화정책 변화가 감지되는 시기이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고, 어떤 부분이 부족한가에 대한 다각적인 고민이 절실한 때이다. 세계적인 투자가로 알려진 워런 버핏의 한 마디가 귓가에 맴돈다.
“수영장의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하는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