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생치안이 위태롭다 김희준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 변호사 |
얼마 전 광주 수완지구 백주대로에서 문신 가득한 조폭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경찰관들이 출동한 상황에서 택시승차 문제로 민간인을 집단으로 무차별 폭행을 해 실명에까지 이르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국민청원이 개시됐고 순식간에 수십만명이 청원에 참가하면서 전 국민적 관심사건으로 부상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필자는 80-90년대에 조직폭력배들이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세를 확장해가던 상황들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광주시내에만 6개의 대표적인 폭력조직이 있었고 각자 활동구역이 정해져 있어 소위 땅을 지킨다면서 깍두기 머리에 검은 양복을 입은 조폭들이 길가에 나란히 서서 위세를 가하거나, 대로에서 조직의 선배에게 단체로 90도 각도로 인사하는 장면은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다른 폭력조직의 조직원들이 자신들의 영역에 침범이라도 하면 시민들이 면전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흉기를 들고 싸우기도 하였다. 80년대 후반부터 호남의 폭력조직들은 서울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영남 폭력조직은 그 지역의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자생할 수 있었는데 반해 호남의 경우에는 그럴만한 경제적 기반이 없어 대거 서울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중 가장 크게 성장한 조직이 그 유명한 서방파, 양은이파, OB파라는 3대 조직이다. 이들 조직은 서울로 진출한 후 각종 이권 개입으로 세를 빠르게 확장하면서 전국구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외에도 각 지역별로는 군소 폭력조직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그 지역의 밤 질서를 장악해 나갔다. 그러한 과정에서 사시미칼이 등장하고 각종 유혈사태가 발생하는 등 폭력의 정도와 횟수는 심화돼 갔다. 민생치안은 급속도로 위태로워졌고 시민들은 불안해했다. 이에 대한 대처로 노태우 정부에서는 1990년 10월13일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였고 그 무렵 검찰에 강력부를 창설했다. 이렇게 창설된 강력부는 강력계 형사들과 함께 폭력조직들을 대대적으로 수사하면서 붕괴시켜 나갔다. 3대 폭력조직의 간부급들이 모두 구속되면서 미국의 마피아, 일본의 야쿠자, 홍콩의 삼합회, 대만의 죽련방처럼 국가도 손을 대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 조직화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대한민국은 민생치안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평가를 받았다. 밤거리를 맘대로 활보할 수 있고 밤새도록 외부활동을 해도 위험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조직폭력, 마약, 총기부분에 대하여 세계적으로 가장 잘 대처한 나라라고 부러워했다. 당시 검찰 강력부의 위상은 높아져갔고 시민들은 강력부의 활약에 박수를 보냈다. 검찰 내에서도 강력부는 인기부서가 됐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강력부 검사가 대표적인 캐릭터로 등장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부터 재벌수사, 부패수사 등 금융이나 특별수사 분야가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민생치안에 대한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도외시되어 갔고 강력부의 위상은 추락하여갔다. 최근에는 검찰에서 강력부 폐지까지 논의되고 있다. 미국 검사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범죄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첫 번째가 마약범죄, 두 번째가 조직범죄, 세 번째가 화이트칼라 범죄라고 했다. 그 이유는 마약범죄와 조직범죄가 국민의 실생활과 가장 밀착돼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그동안 우리가 누려왔던 안전한 생활환경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었는데 그걸 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와 존재이유는 국민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부패범죄, 기업범죄, 금융범죄 등도 매우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조직폭력, 마약 등 조직범죄이다. 이 부분에 대한 효율적인 대처를 하는데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부서와 전문인력 양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도 강력계 형사업무는 기피하는 자리가 되어가고 검찰의 강력부의 폐지논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이 신속하게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무조건 비판할 일도 아니다. 전문인력이 아닌 한 그에 대한 대처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만약 강력계 형사가 출동을 했다면 어땠을까? 이번 사건을 일회성 사건으로 보면 안 된다. 다시 예전처럼 조직범죄가 활성화될 전조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삽으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할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에 온 힘을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