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27일 새벽의 서사 정준호 법무법인 평우 대표변호사

2018년 05월 27일(일) 19:10

광주시민부터 5·18을 바로 알자.

5·18민주화운동 제38주년을 보내면서 그동안 왜 1980년 5월18일부터 열흘 동안 광주의 어디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꼼꼼히 들여다볼 기회를 갖지 못했는지 반성한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광주사람들은 자신들이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열흘 동안 계엄군의 학살만행이 잔혹하게 벌어졌던 현장들, 그들과 맞서 시민의 목숨을 보호하고 광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불사했던 시민군들의 모습, 시민군들에게 주먹밥을 만들어주고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던 시장 아줌마들, 부상자들의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아가 줄지어 헌혈을 하던 남녀노소의 시민들, 신군부의 만행과 시민군의 투쟁의 당위성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밤을 세워가며 홍보물을 만들고 도청 앞 집회를 준비했던 사람들의 모든 상황을 직접 체험하거나 알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그 모든 상황을 직접 체험한 것처럼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광주시민으로서 내가 했던 일과 광주에서 일어났던 많은 일들을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열흘 동안의 광주이야기와 광주시민의 기억은 더 장엄하고 자랑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5월27일 새벽을 기억하자.

5·18민주화운동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5월18일만 기억하거나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5·18민주화운동의 전체 과정에서 5월27일 새벽이 가장 중요하게 기억되어야 할 날이어야 하지 않을까. 5·18민주화운동이 신군부 세력의 무자비한 진압작전에 의해 도청이 함락되던 순간, 계엄군이 재진입한 전남도청이 모두 도망가고 텅 비어 있었다면? 이 물음에서 광주가 광주다울 수 있었던 이유와 광주가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의 정점에 자리할 수 있었던 명백한 이유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5월26일 밤 그 자리에 남아 있으면 당연히 계엄군의 총탄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곳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날 새벽 광주의 참혹한 죽음은 전국, 아니 세계의 모든 민주인사들에게 부채의식을 갖게 했고,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세력들에게는 학살의 원죄를 갖게 만들었다. 심지어 광주시민들조차 새벽의 어둠을 뚫고 울려 퍼지던 한 여성의 처연한 방송을 집안에서 들어야 했고, 뒤이어 광주의 새벽 밤하늘을 찢어발기던 총소리로 시민군들의 죽음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상황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미안했다. 그러니 광주의 열흘 동안의 항쟁 과정에서 가장 의미 있게 기억되어야 할 날은 5월18일 못지않게 5월27일 새벽 상황과 그 상황을 처절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시민군들의 ‘죽음의 선택’이어야 한다. 또한 그들의 선택과 여기서 장렬하게 산화하신 열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이후 대한민국은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점을 형성할 수 있었고, 대립의 구분은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숨기려는 자들과 반드시 드러내려는 세력으로 나뉠 수 있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은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5월27일 새벽의 서사가 아시아문화전당의 대표콘텐츠가 되도록 하자.

나는 1980년에 태어났다. 이후 태어난 사람들에게 5·18민주화운동은 역사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해서 당시 대구가 고향이던 한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당시에도 충격이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너희들이 이렇게 자유롭게 교수와 토론도 하고 사회를 비판할 수 있게 된 것이 모두 1980년 광주가 있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그렇다. 광주는 5·18민주화운동이라는 불행의 역사만 보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불행을 딛고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오늘에 있게 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 자랑스러운 역사가 ‘광주의 도시 정체성과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두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하나는 38년 만에 다시 주어진 진실규명의 기회를 제대로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5·18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그것이다. 지금부터 서둘러 대비해야 한다. 이미 그 방법은 다른 지면을 통해 제시한 바 있다. 또 하나는 27일 새벽 상황이 5·18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장엄한 서사를 보듬고 있는 옛 전남도청에 들어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대표콘텐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이 아시아의 민주, 인권, 평화의 발전과 확장에 기여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5월 27일 새벽, 그 현장에서 체포된 후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치러야 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장렬하게 산화해 가신 17분의 열사들! 그들의 서사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존재 이유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전당의 대표경쟁력이 되어야 한다. 그랬을 때 1980년 이후에 태어난 나와 같은 광주사람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돼 집단지성의 바탕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