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인(Marginal Man)을 생각하며 박돈희 전남대 명예교수 흥사단투명사회운동본부 자문위원

2018년 07월 23일(월) 19:56

미국 시카고대학은 세계적으로 사회학분야에 권위 있는 대학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런 유명한 대학은 끊임없이 연구하는 훌륭한 학자 내지는 교수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1983년 미국 테네시주 내쉬빌의 Vanderbilt대학교에서 생물공학을 연구했는데, 일 년이 지날 무렵 휴가를 받아 시카고대학을 방문하게 되었다. 시카고 대학은 다운타운 중심에 있는데 조용한 한국에서 살던 필자에겐 치안에 무척 신경이 쓰였다. 대학주변은 학교 기숙사로 돼 있었으며 그 주변은 비교적 저비용 주거지로 백인들이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사회학분야의 연구생이 몰려들고 있었다. 1920년대 시카고 사회학파를 창시한 Robert Ezra Park교수가 있다. 저명학자들은 단어의 의미를 정련하고 재 개념화하며 창출해낸다. Robert Ezra Park교수도 인종갈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Marginal man theory란 단어를 사용하게 됐으며 우리말로 번역된 단어가 주변인(周邊人)이다. 영어로 된 Marginal man theory를 ‘주변인 이론’이라는 우리말로 번역하기는 충분치 않다. 주변인, 경계인, 한계인이라고도 불리며 특성이 다른 두개의 문화에 속하나, 그 어느 것에도 충분히 동화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보다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사회에서 갑과 을 사이의 또는 한 개인이 넘나들어야 하고 극복해야할 양 쪽 문화궤도 사이에서 일어나는 팽팽한 심리적 갈등의 범위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지극히 작은 의미의 개인 갑과 갑이 겪는 삶의 현장일 것이다. 전라도 어느 영광 댁의 이야기다. 영광댁 이 여사는 지금 60대초라 우리나라가 산업화 초기단계의 세대로 오빠는 서울소재 대학을 다녔고 이 여사는 구로공단에 다니면서 오빠의 대학생활 용돈을 보태고, 시골집 부모님께 월급을 모아 보냈던 것이다. 그 시절 여성은 대체로 중학교 정도 아니면 고졸을 하고 산업전사로 나선 것이다. 시골 농사일은 지긋 지긋 하고 누구에게도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기에 어떻게 해서라도 도시로 나가 가족 모두가 각자 자기 방이 있고 TV와 전화가 있는 문화생활을 함께 하는 꿈을 꾼 것이다. 그것이 가족 최대의 가업으로 느꼈던 것이다. 이 여사는 최근 오빠의 행동에 강한 우울증 증세가 생겼다고 한다. 오빠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되어 엘리트코스를 밟았다. 올케도 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30여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두 남매를 잘 키워 출가를 시켰다고 한다. 이 여사 어머니는 지금도 영광에 사시면서 오빠에 대한 헌신적 봉사에 매달리고 있다고 한다. 올케가 교사를 할 때 두 조카를 손수 키워준 어머니라고 했다. 지난달 올케 어머님이 작고해 장례를 전남 강진에서 치렀다고 한다. 이때 조카와 조카사위까지 내려와 사돈장례를 마치고 서울로 상경했다. 이 여사 어머님은 조카들이 상경 할 때 당연히 영광 집을 다녀가리라 생각하고 기다리며 혹시나 아들과 조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했는데, 모두가 전화도 없이 서울로 가버린 것이다. 시골 어머님은 서운한 맘으로 딸인 이 여사에게 전화를 해 속내를 말씀 하셨다. 사돈장례식장에 조문 갔었을 때 오빠가 따로 불러 용돈을 슬쩍 주면서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더라고 했다. 분명 오빠와 올케사이에 서로 살아가는 문화의 갈등이 있다는 생각했다고 한다. 한 부모 밑에서 자라서 각자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면서도 하찮다고 생각하는 일상사가 우리의 감정을 응어리처럼 모아 놓고 있다. 이 응어리를 적절하게 소화하지 못하면 성공한 삶으로 보였던 필부들도 실로 엄청난 갈등을 껴안고 사는 셈이다. 이 여사어머님은 조카들이 결혼 할 때 적지 않은 액수의 혼사비용을 올케에게 전했다고 한다. 조카들이 생각하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에 대한 생각들이 서로 다르며 친정집의 남매들이 갖는 심적 갈등과 올케가 겪는 심적 갈등 역시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삶의 궤적이 서로 다른 소위 문화격차에서 오는 주변인으로의 고민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메꾸어가야 할 문화갈등이라고 보아야하는가? 상식과 교양의 내공으로 서로의 공감으로 극복이 가능한가?

최근 우리사회도 갑과 을의 갈등현상이 비등점(沸騰点)을 넘고 있으며 하루 빨리 사회 안정을 위한 심리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시기다. 더 잘살게 되었지만 어디에도 동화되지 않는 문화차이, 생활 속의 삶의 차이는 늘어 가고 서로 다른 이해와 팽팽한 오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미국사회가 1920년대 겪었던 Marginal man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시급하며 일상의 삶을 통한 사회의 발전적 공감대를 만들어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