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년생 김지영 그리고 맘충 정준호 |
| 2018년 08월 05일(일) 1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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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무술년 개띠의 해가 뜨거운 여름과 함께 절반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가장 유명한 개띠는 단연 58년 개띠다. 더불어 최근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작품으로 82년 개띠 역시 세대 명사화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24년 터울인 두 계층사이에는 적지않은 차이가 존재한다.
58년 개띠는 베이비붐세대의 대표격이다. 콩나물교실에서 교련을 배우면서 자라나 80년 광주의 모습을 보고 의식을 형성하고 86년 넥타이부대로 뜨거운 20대의 마지막을 보낸 뒤, 40대의 시작을 IMF와 함께하면서 구조조정의 극한 시기를 감내했다. 이제 58년 개띠는 환갑에 이르렀다. 이렇게 58년 개띠는 현대사의 산증인으로 요동치는 사회의 바람을 두 다리 힘주고 버텨낸 아버지의 모습이다.
82년생 김지영은 반대로 저출산사회의 대표격이다. 비교적 민주화된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고교시절 IMF를 겪으면서 안정적인 직장으로 진로를 수정한 사람들이 태반이다. 학생운동 대신 세계화시대에 맞추어 적지않은 비용으로 어학연수까지 받았지만, ‘이태백’이라는 극한 취업난을 겪고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으로 겨우 신혼집을 마련해 결혼에 성공한다. 이제 한창인 30대 중반을 경력단절로 고민하면서 직장생활과 육아로 보내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육아우울증’과 같은 단어처럼 가정에만 충실했던 어머니세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동생의 모습이다.
불과 20여년 사이에 베이비붐 시대에서 저출산 사회로 변모된 것 자체도 놀랍지만, ‘자식만’ 바라보면서 위안을 얻었던 어머니세대가 직장생활에 ‘자식까지’ 책임져야 하는 여동생세대로 변화된 것이 좀처럼 실감나지 않는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이제 먹고 살만해졌지만 결국 출산과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맞벌이부부 시대의 여성의 역할은 여전히 만만한 것이 아니다.
특히 ‘82년생 김지영’ 소설에서는 커피를 마시는 김지영에게 ‘맘충’이라는 단어로 비하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실제로 몰지각한 어머니를 뜻하는 ‘맘충’은 인터넷에서 꽤 많이 볼 수 있는 단어다. ‘맘충’이라는 단어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가 ‘인구절벽’ 등 저출산문제가 맞는지 혼란스럽다. 제발 아이 하나라도 더 낳아달라고 권장하면서도 막상 아이를 낳고 나서는 ‘맘충’과 ‘노키즈존’이라는 단어들에 직면하여야 하는 현실처럼 육아부담자에게 너그러운 사회분위기는 아닌 것이다.
‘맘충’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은 이른바 ‘아줌마 커뮤니티’이다. 육아부담자들이 모인 지역커뮤니티에서는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친절하지 않는 업체정보가 공유되는데 간혹 과장되거나 허위의 체험을 토대로 업체를 비방할 경우에 ‘맘충 갑질’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워낙 지역 내부에서 파급력이 센 커뮤니티이다보니 지목받은 업체는 폐업 위기 수준의 매출감소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점은 이러한 ‘맘충’ 문제를 인성교육이 필요한 개별적인 부모와 아이의 문제로 치부하는 분위기이다. 사실 ‘맘충 갑질’ 문제는 많은 사회적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맘충 갑질’의 본질은 극심한 취업난에 안정된 직장생활 대신 창업전선으로 몰리게 된 청년 문제와 경력단절 또는 일·가정양립의 부담을 지고 있는 여성간의 감정적 대립에 익명성을 토대로 무책임하게 과장되거나 제한된 정보만으로 사건을 단정짓는 인터넷공간의 문제가 더해진 것이다. 마침 대가를 지불하고 입장한 업체내에서 도대체 불편해야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용자들은 ‘노키즈존’을 통해서 구미에 맞는 장소를 확보하려고 한다. 이러다 인종차별의 대명사인 ‘separate but equal’ 판결이 ‘키즈존’과 ‘노키즈존’에 적용될지도 모르겠다.
맞벌이부부생활과 워킹맘생활을 하여야 하는 82년생 김지영에게는 출산장려금이나 보육지원금이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훈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육아우울증’에 사회가 관심만이라도 가지길 원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힘드니 ‘꽃으로도 때리지만 말아라’는 말을 하고 싶은 지도 모른다. 이쯤되면 저출산문제의 시급과제는 정책이나 제도적인 부분보다는 사회 인식의 문제가 우선일지도 모른다.
문득 카프카의 ‘변신’이 떠오른다. ‘변신’에서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어서도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다가 아버지가 무심코 던진 사과에 맞아 죽는다. 우리가 제멋대로 벌레로 만들어버린 82년생 김지영들. 이제는 꽃으로 건들기만해도 큰일 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