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찌 냉대하고 지극정성으로 환대할 수만 있으리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288) |
| 2018년 08월 21일(화) 19:25 |
|
저헌 이석형
순임금 때 이녀죽의 슬픈 일이 있었고
진나라 때 대부송의 영화로움 있었다네
이들을 어찌 지극정성 환대할 수 있으리.
虞時二女竹 秦日大夫松
우시이녀죽 진일대부송
縱有哀榮異 寧爲�b熱容
종유애영이 영위참열용
시는 비유와 상징이라고 한다. 평범한 시는 비유적인 시어를 끌어들이지 못해 공감이 적다. 이념의 푯대 끝에 자기의 이상을 걸어 놓고 그를 향해 나가는 것처럼 상징인 그 무엇을 정해 놓고 시상을 이끌어 가야만 좋은 시가 된다는 뜻이다. 시인은 시제를 설정해 놓고 ‘이녀죽’(二女竹)과 ‘대부송’(大夫松)이란 비유에 시적인 초점을 맞췄다. ‘순임금 때는 이녀죽의 슬픈 일이 있었고, 진나라 때는 대부송의 영화로움이 있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어찌 냉대하고 지극정성으로 환대할 수만 있으리’(端宗)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저헌(樗軒) 이석형(李石亨·1415-1477)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김반의 문인으로 1441년 좌정언이 됐고, 1442년 사가 독서했던 인물이다. 집현전직제학, 판중추부사 전라도 관찰사 등을 역임했고, 1471년 ‘대학연의집략’을 찬하기도 했다. 저서로 ‘저헌집’이 있고 시호는 문강(文康)으로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순임금 때는 이녀죽의 슬픈 일 있었고 / 진나라 때는 대부송의 영화로움 있었네 // 이들 슬픔과 영화로움 다를 뿐이지만 / (그렇다 해서) 어찌 냉대하고 지극정성 환대할 수만 있으리]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어린 단종을 생각하며 / 슬픔과 영화는 다르지만]으로 번역된다. 이 시제는 [이녀죽(二女竹)과 대부송(大夫松)]으로 돼있고, 시제 아래 [차익산동헌운(次益山東軒韻)]으로 돼 있기도 하다. 시인은 이 시를 사육신의 죽음에 대한 내용을 썼으니 마땅히 단종의 죽음과 연관 지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위의 내용을 알고 보면 죽음을 당하는 사육신을 슬픔의 표현인 [이녀죽]으로, 죽음을 면하는 시인 자신을 [대부송]으로 비유하고 있음이 더 옳겠다고 본다.
시인은 순임금 때 아황과 여영이란 두 왕비가 순임금이 죽자 슬프게 울어 소상강의 대나무에 얼룩이 생겼음을 빗댔다. 순임금 때는 이녀죽의 ‘슬픈 일’이 있었고, 진나라 때는 대부송의 영화로움이 있었다는 시상이다. 대부송은 진나라 진황제가 소나기를 피하도록 도와서 대부 벼슬을 내렸다는 ‘영화로운 일’을 뜻한다.
화자는 위 두 가지의 비유적인 상징은 비록 다르지만 ‘열용’(熱容)으로 한대해서는 안 된다는 깊은 뜻을 담는다. 이들의 슬픔과 영화로움이 다를 뿐이니 그렇다고 어찌 냉대하고 지극정성으로 환대할 수만 있으랴 라는 시상의 가르침이다.
※한자와 어구
虞時: 우임금 때, 곧 순임금 때를 말함. 二女竹: 우 나라 때 두 여인의 대나무. ‘슬픈 이야기’. 秦日: 진나라 때(日=때). 大夫松: 진(秦) 나라 때 대부 칭호를 받은 소나무. 곧 ‘기쁜 이야기’ // 縱: ~일 뿐이다. 有: 있다. 哀榮異: 슬픔과 영화가 다르다. 寧爲: 어찌 ~하리. �X熱容: 냉대하고 지극정성으로 하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