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노금의 역사 동화] 2, 이성계와 정도전의 전라도-변방 함주에서 꾸는 꿈 |
| 2018년 10월 17일(수) 1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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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아이들과 함께 골목으로 사라지는 소년 정도전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아이들과 함께 다시 그 소년이 나타날 것만 같아서 이성계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러 서있었습니다.
“정도전이라 했던가?,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려 했는데···.”
뉘엿뉘엿 해가 지려는 저잣거리를 향해 그는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다음날 이성계는 아버지 이자춘을 호위하면서 아침 일찍 함주로 향했습니다.
“말을 더 빨리 달리자구나.”
아버지는 얼마 전 갑자기 왜구가 쳐들어오던 때가 생각이 났는지 한 시라도 빨리 함주 땅에 도착하려고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했습니다.
곳곳의 마을들이 왜구의 노략질에 거의 쓰러져가고 불탄 집들도 보였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철이었지만 여기저기 굶어죽은 백성들의 모습과 기진한 어미의 젖을 빨며 우는 아이들의 모습은 고려의 형편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 했습니다.
“곧 겨울이 올 텐데 이 백성들을 어이할꼬.”
“참으로 큰일이옵니다. 아버님.”
“변방을 튼튼히 해서 백성들을 적의 침략에서 보호해야 하거늘….”
“배고픈 설움도 크지만 보호받지 못해 적에게 침략과 수탈당한 백성들의 모습이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아버님.”
자신들의 관할 구역을 적에게서 지켜내기 위해 엄동설한에도 밤잠을 자지 않고 성루를 순시하던 아버지 이자춘이 새삼 더욱 존경스러웠습니다.
“나라의 녹을 먹은 장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 땅을 적들이 못 밟도록 해야 하고 백성들을 적에게서 안전하게 보호해야하는 책임이 있음을 이제 너도 가슴에 새겨야 하느니라.”
“예. 아버님 명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자춘의 명성은 함주 땅에서 날로 높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오히려 아들 이성계가 많은 사람들에게 용맹스러움이 알려져 촉망을 받고 있음을 기뻐했습니다.
‘장차 왕이 된다는 내 아들 아닌가?’
무학대사의 말만 생각하면 이버지 이자춘은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이자춘이 관할하는 함주 땅에 들어서자 마을의 모습도 반듯하고 백성들의 모습도 아까 와는 확연히 달라보였습니다.
“아이구, 우리 도련님도 이젠 개경 출입을 하시는군요.”
“아이구, 고마우신 우리 장군님.”
“그러게…, 그러게…, 이렇게 맘 편하게 가을걷이하고 식량을 곳간 안에 쌓아 본적이 우리가 언제 한번이라도 있었었나.”
백성들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이자춘은 무장이었지만 자신이 관할하고 있는 백성들의 농사철이 되면 군대를 풀어 씨를 뿌리고 추수철이 되면 가을걷이를 함께 도와 곡식을 곳간에 들였습니다. 홍건적들에게 내년에 파종할 곡식까지 다 빼앗기고 배고파 죽어가는 백성들이 형편이 이자춘의 주둔으로 놀랍게 변한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앞날을 위해 아비로서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자춘은 언제나 아들이 왕위에 오를 그 날을 남몰래 꿈꾸며 더 백성들을 위하였습니다.
“장군님도 장군님이시지만 아드님도 훨씬 더 자애롭고 용맹스러우신 것 같아.”
“왜 아니겠어. 두고 봐. 장차 임금이 되실지 누가 아는가?”
“쉿… 이 사람아. 누가 듣네…”
이성계가 왕이 될 것이라는 말은 함주 지방에서는 오래 전부터 백성들 사이에 널리 퍼졌던 것입니다. 백성들의 환호 속에 이자춘과 이성계는 군영에 도착했습니다.
언제 보아도 엄격한 질서가 흐르고 잘 훈련된 군영을 보면서 이성계는 새삼 자신이 이끌어갈 새로운 내일에 대한 기대감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이 밤에도 개경의 젊은 관리들은 열심히 학문을 연마하고 있겠지?’
스승으로 모시는 이 색의 문하에서 지난번 보다 훨씬 깊어진 학문에도 더 겸손하게 자신을 대해주던 젊은 관리들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올랐습니다.
“무슨 생각이 그리 많은 게냐. 피곤할 텐데 어서 자거라.”
“네, 아버님.”
밤늦도록 아들의 방에 불이 켜져 있음을 보고 이자춘이 친히 와서 불을 꺼주고 나갔습니다.
청년 이성계는 개경에서의 일들과 정도전이라는 소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생각이 나서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