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금의 역사 동화] 4, 이성계와 정도전의 전라도 - 백성들의 서러운 눈물

2018년 10월 23일(화) 19:34

/그림:선성경

아버지 정운경과 스승 이색의 권유로 정처 없이 세상을 돌아보게 된 정도전은 경기도에서 함주 지방 출몰하는 왜적을 이성계 장군이 크게 물리쳤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성계라는 사람은 어떤 분일까?”

많은 백성들이 굶주리고 헐벗었지만 나라의 국경을 든든히 했다는 함주 지방의 소식에는 남녀노소 너나없이 안도감을 느끼고 기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성계 장군이 얼마 되지 않은 군사로 이번 싸움에서 크게 이겼다 하오.”

“전쟁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고 몸서리가 쳐요. 아이구, 고마우신 이성계 장군님….”

백성들은 앞을 다투어 이성계를 칭송 했습니다.

“이성계 장군이 이토록 대단한 사람이었단 말인가?”

정도전은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아가 많은 것을 보라고 자신의 등을 떠밀어 낸 아버지와 스승 이색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습니다.

“이토록 헐벗은 백성들임에도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에 이토록 안도를 하는구나.”

개경에 있을 때는 최영 장군 정도밖에 몰랐던 정도전에게 세상은 이성계에 대해서 다시 알려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경기도와 충청도를 돌아 전라도를 걸었고 강원도를 걸었습니다. 전라도 지역에서 만났던 어느 과부의 노래는 오랫동안 그의 뇌리에서 잊혀 지지 않았습니다.

서방님이 살아 계실 때는/ 두 식구가 한 집에 살며/ 문 앞의 작은 땅에서/ 일 년 농사 근근이 지어 풀죽이라도 먹었지만/ 지난해 여름에는 가뭄에다가/ 가을에는 몹쓸 놈의 늦장마까지 내려/ 빗자루로 하루 종일 땅을 쓸어도/ 내 입에 넣을 콩 한쪽 도무지 없네.

다 쓰러져가는 산골의 어느 집에서 나오는 노래 소리인가 귀를 기울이는데 노래가 아닌 한 여인의 기가 막히게 서러운 신세한탄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된 것입니다.

겨와 밀기울에 소나무 껍질을 섞어도/ 겨울을 나기엔 턱없이 부족했네./ 봄이 오자 부잣집에/ 가서 나락 한 줌 얻어 한 톨도 못 먹고/ 고스란히 두었다가 종자로 썼네.

기력은 날로 쇠해지고/ 뱃가죽은 날로 오그라들고/ 이렇듯이 함께 굶었어도/ 계집은 나무처럼 질긴 몸이던가/ 나는 간다. 우리 서방님 떠나시니/ 앞산 기슭에 가신 님을 묻었다오.

“서방님은 썩어 가는데 뿌린 알곡은 익어 가더라구요. 누구 먹으라고 곡식은 익어 가는지. 먼저 가신 님을 따르려 해도 엎드려 기어 다니는 아이 때문에 죽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를 보고 힘을 내서 살아가셔야지요.”

“곡식 한 줌 훑어서 자식 목에 죽이라도 쑤어 먹일까 하는데 지주라는 사람이 보낸 자들이 몰려와 행패를 부리더군요. 소작료를 내라하는데 쌀 한줌 됫박에 넣어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뺏기고 나니 이대로 죽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입니다.”

그 과부의 말은 조금도 틀림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고려조정은 이미 백성들은 조금도 안중에 없고 권세가들은 자신들의 배만 불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토록 홀로 된 과부가 피를 토하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고려라는 나라가 썩었단 말인가?”

그저 막연히 생각했던 권세가들의 패악질이었고 무능한 고려 조정이었습니다.

“밥 줘···, 배고파. 배고파···, 엉엉···”

울며 달려드는 세 명의 아이들을 어쩌지도 못하고 힘없이 죽어가는 젊은 아낙의 서러운 눈물을 보면서 정도전은 비로소 고려라는 나라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충청도를 지나 전라도 전주지방까지 어디를 돌아봐도 이런 참상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나주 지방은 굶어 죽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로다.”

거의 거지 행색인 정도전에게 그래도 나주 사람들은 젊은이가 웬 고생이냐며 주먹밥 한 덩이라도 따뜻히 건네주었습니다.

“여기 나주는 평야지역이고 강과 바다가 있어 물고기라도 잡아먹고 죽이라도 배곯지 않고 먹는데 고려 백성들이 이러다가는 다 굶어 죽게 생겼어요.”

“그렇습니다. 큰일입니다.”

“아이구, 권세가들의 토지는 산과 강을 경계로 하는데 정작 농사를 짓는 백성들은 송곳 꽂을 땅도 없으니 이것이 보통 큰일이 아니구만요.”

충청도 지방을 돌 때 쌀 한줌이 없어 자식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봐야 했다며 피눈물을 쏟던 어느 여인의 말은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도전은 비로소 자신이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스승님 감사 합니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소자가 이제 비로소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