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벨상’의 계절을 보내면서 이윤배 |
| 2018년 10월 29일(월) 1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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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노벨상의 계절이 지나갔다. ‘혹시나’ 했던 어리석은 기대는 ‘역시나’로 끝났다. 일본은 면역요법으로 암 치료법을 발견한 혼조 다쿠스 교토대 교수가 노벨과학상(생리의학)을 수상했다. 4년 연속 노벨과학상 수상으로 일본 열도가 후끈 달아올랐다. 일본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후 기초과학분야에서만 올해까지 23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이 유일무이(唯一無二)하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일본 정부는 이미 1990년 ‘50-30 프로젝트’를 통해 50년 동안 기초과학분야에서 3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바 있다. 그리고 연구개발에 국민총생산의 2%를 매년 투자하면서, 이중 40%를 기초과학연구에 지원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리고 1985년 이후 지금까지 1만5천여 개의 기초과학연구소를 세우고 꾸준히 투자를 계속해 왔다. 이 같은 기초과학분야에 대한 과감하고 꾸준한 투자가 결국 일본이 세계 최고의 기술 수준을 갖게 된 원동력으로 작용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은 비관적이다. 현재 4년제 대학만 200개가 넘고 대학들은 양적 팽창에 급급한 나머지 실력 있는 학생들을 양성하기보다는 그저 고만고만한 학생들을 국화빵 찍어내듯 찍어내고 있을 뿐이다. 학문 연구는 뒷전이고 취업 양성소가 된 지 이미 오래다. 교수들의 연구비 역시 몇몇 유수 대학 교수들이 싹쓸이 하고 있다. 연구비를 받아도 알맹이 없는 일과성 논문 한 편 쓰면 그만이다. 구조적으로 장기간에 걸친 심도 있는 연구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당장의 연구 성과만을 중시한 채 국가 차원에서의 기초 과학 육성 의지 역시 소극적이며, 연구 대학 육성에 대한 비전도 전략도 형식적이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학 구조 개혁을 외쳐댔지만 늘 소리만 요란할 뿐, 용두사미에 그쳤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수학 능력 시험을 통해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고, 미래 인생의 진로가 결정되는 나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하다. 초·중등학교의 모든 교육이 개성이나 적성은 무시된 채, 대학입시를 위한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오직 점수 따기 교육, 수요자보다는 공급자 중심 교육, 그리고 여전히 자율보다는 규제 일변도의 관치 교육 정책이 횡행하고 있다.
과기부는 수학·과학 영재 교육 강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교육부는 어려운 기하·벡터를 수능에서 제외하자고 엇박자를 내고 있다. 한심한 작태다. 국제올림피아드 대회에서도 뒷걸음질을 치고 있고 이공계 이탈 현상은 물론 고급 두뇌 해외 유출 역시 심각하다. 이런 까닭에 현재와 같은 입시제도와 교육 풍토 속에서는 앞으로 100년이 가도 노벨과학상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비관할 수만은 없다. 세계 시장에서 초일류 제품과 초일류 기업만 살아남듯이 우리 역시 더 늦기 전에 제로베이스(Zero Base) 상태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을 위한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있어야 한다. 무한경쟁 시대 0.1% 초일류 인재 확보가 필수다. 이를 위해 수학능력시험을 ‘대학입학자격시험’으로 바꿔야 한다. 특히 수학능력시험의 성적순이 아니라, 기초 과학 분야 별로 재능과 능력이 뛰어난 어린 인재들을 조기에 발굴하여 국내외에서 가장 우수한 과학자들을 초빙, 이들을 전담 지도하도록 하고, 최신 실험 실습 장비를 갖추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 집중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 요직에 이공계 출신 일정 비율 의무 임용, 우수 과학 인력의 정년 연장, 성과 중심 보상 체계 강화, 퇴직 과학 인력 지원 확대, 연금 수혜율 제고 등 다양한 지원책을 법제화하여 이공계를 정책적으로 우대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어느 해 10월에는 당당히 노벨상 수상자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