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내장과 운전 기홍석 |
| 2018년 11월 06일(화) 18:43 |
|
1Q 84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우리나라에서도 매니아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는 세계적인 다작(多作) 소설가이다. <여자가 없는 남자들>은 하루키가 9년 만에 펴낸 단편집으로 사별이나 실연으로 아내와 연인을 잃은 남자들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있다. 그 중 ‘드라이브 마이카’는 소설 첫 번째에 나오는 이야기로 자궁암으로 아내를 잃은 50대 연극배우 가후쿠가 등장한다. 그는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낸 후 검사과정에서 녹내장이 발견되고 자기 차를 운전해줄 운전사를 물색하게 된다. 단골 정비공장 사장의 소개로 미사키라는 20대 여성을 추천받는데, 미묘한 분위기의 미사키에게 마음을 열게 되면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상실과 상처라는 하루키의 주제가 부각되는 작품이다.
“경찰이 지정한 안과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녹내장 징후가 발견됐어. 시야결손이 있다는 거야. 오른쪽 구석에 여태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음주운전은 알코올 수치가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에 조용히 처리할 수 있었다. 매스컴에 새나가지 않게 조치도 했다. 하지만 시력 문제는 소속사에서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지금대로라면 오른쪽 뒤에서 차가 다가와도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에 재검사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절대로 운전을 하지 말라고 소속사는 지시한다.
우리나라 운전면허 적성검사 기준 중에서 눈에 관한 규정을 살펴보면 제1종 기준으로 영업용 운전자는 두 눈 시력이 0.8, 각각의 눈은 0.5 이상(자가운전자는 두 눈 시력 0.7, 각각의 눈 시력 0.5 이상일 것)이며, 2종 운전자는 두 눈 시력이 0.7 이상, 각각의 눈 시력 0.3 이상이다. 색각에 대해서는 적색, 녹색, 황색의 구분이 가능하면 되며(적록색맹이라도 관계없음), 시야가 150도 이상일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시야에 관한 규정이다. 우리나라 적성검사 특성상 시력, 색신 검사는 제대로 검사가 시행되지만 시야검사에 대해서는 거의 무방비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녹내장은 시력이 떨어지는 질환이 아니고 시야가 좁아지는 병의 특성상 중증의 녹내장환자의 시력도 1.0 이상인 경우가 많다. 말기 녹내장 환자는 주변 시야가 모두 상실되고 중심부 10도 내외의 시야가 남아있는 소위 관상시야(管狀視野: tubular vision)만 남아있는 경우라도 시력이 우수한 경우가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전방 주시 시야가 10도 내외로 측면(側面)이나 후측(後側) 시야는 물론이고 정면 시야에 상당부분의 암점(暗點: 보이지 않는 부분)이 존재해 운전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어 본인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 위험하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실 병원에 내원하시는 녹내장 환자들 중에서 운전에 부적합한(시야 150도 이내) 환자들이 많으며, 이 분들 중 상당수가 운전을 계속하고 계신다. 이런 분들이 운전을 하면 전방에 장애물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측면에서 달려 들어오는 차나 사람들을 놓치기 쉬워 위험한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본인의 안전은 물론 타인의 안전을 위해서 운전을 삼가해야 한다. 또한 제도적인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 여자가 없는 남자들-무라카미 하루키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