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직 못 해먹겠다! 박대우 |
| 2018년 11월 22일(목) 1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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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권 출범 첫해인 2003년 5월 21일, 취임 후 석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자신의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 사용하는 언어로서 부적절했다는 세간의 지적을 넘어 야당과 보수언론은 대통령의 자격까지 들먹이며 정부를 공격하는 빌미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보면 ‘대통령직 못 해먹겠다’는 발언은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가장 간략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대한민국 전체가 각각의 진영과 집단논리로 제 몫을 찾겠다는 갈등구조 속에서 당장 정부의 정책이 지연되는 어려움은 둘째치더라도 앞으로 다가올 위기감까지를 대비해보면 그의 표현은 차라리 명징하다.
21일 민주노총의 총파업으로 서울과 부산, 울산 등 전국 14개 지역에서 동시 집회가 열렸다. 민주노총은 하루 동안 일손을 놓은 조합원 4만여 명과 일정 시간 업무를 중단한 조합원까지 16만여 명이 파업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이번 파업에 그치지 않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택배기사와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 권리’를 보장하는 등의 민주노총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를 향한 투쟁의 고삐를 놓지 않겠다고 밝혔다. 특히 탄력근로제 적용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 또는 1년까지 늘리기로 한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 정면으로 날을 세우고 있다.
정부의 대응도 강경하다.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목소리를 살펴보면 ‘민주노총과 전교조 등이 더 이상 사회적 약자는 아니다’라거나, ‘민주노총이 말이 안통하고 폭력적’이고, ‘어떤 집단이라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강경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강한 어조로 노동계를 압박하는 것은 탄력근로제를 비롯한 노동계의 주장이 결국 광주형 일자리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탄력근로제와 광주형 일자리를 야심차게 추진하는 시점에서 정부정책에 제동을 거는 노동계에 더 이상 밀려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드러나 있다. 민주노총의 목소리에 우호적이지 않은 여론을 기반으로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의지도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정부의 생각과 의지대로 정책을 실현시키기에는 결코 녹록치 않은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먼저 집권 2년 차에 들어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심상치 않다. 국내 여론조사 전문기관의 발표에 의하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8주 연속 하락한 52.5%까지 떨어져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39.8%의 지지율로 약 4달 만에 다시 30%대로 낮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중요한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계와 전면전을 펼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민주노총 등 핵심적인 지지층이 떠나가면서 지지율이 20%까지 떨어졌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정치권의 입장과 대응 수위가 각각인 것도 풀어야 할 난제이다. 여당과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오히려 양측의 균열을 더 부추기는 듯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진보단체 일각에서는 민주노총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히고, 정의당과 민중당 등 진보정당 뿐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도 지금처럼 노동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노동계를 밀어붙이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고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광주형 일자리가 과연 정부의 정책이냐, 기업의 투자인가를 정확하게 구분 짓는 것이다. 정부가 공공성을 포함하는 정책으로 추진하는 것과 수익을 우선하는 기업이 투자하는 차이점은 크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출발선이 흐릿한 협상에서 적정임금과 근로시간, 경영의 주체와 책임, 노사문제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논의가 정점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설령 합의에 이른다 해도 지원과 수익을 혼합한 일자리의 지속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기반시설을 비롯해 인프라가 확보된 군산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이유이다.
울산에서는 광주형 일자리로 저임금 공장이 생기면 결국 생산물량이 광주로 쏠리게 되고 울산을 비롯해 평택, 창원, 서산 등 타 지역까지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칫 지역 간 갈등과 대립으로 치달을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차라리 공모형태가 나을 것 같다는 의견까지, 이제 광주형 일자리는 국정의 기조를 흔들 수 있는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놓여있다. 진퇴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국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을 화두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