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라 인간들아 조영환 수필가

2018년 12월 03일(월) 19:29

사람을 종종 동물에 비유한다. 여우같은 여자, 늑대 같은 남자, 초식남, 건어물녀 등. 이러한 비유 속에는 은근히 인간 또는 동물종의 하나라는 것, 인간이 동물을 닮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긴 인간은 식물이 아니니까 이것은 그럴 듯한 비유이긴 하다. 하지만 동물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정말 펄쩍 뛸 일이다. 자신을 모독했다고 인간에게 항의할 것이다. 먹잇감을 사냥하는 사자조차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비록 자신의 사냥이 다른 동물을 무참히 죽이는 것이긴 해도 말이다.

사자에게는 대안이 없다. 사자는 육식동물이고 다른 생명을 잡아먹어야 산다. 이것이 필연이고 그의 운명이다. 하지만 사자도 배가 부르면 앞에서 알짱대는 다른 동물들에게 관심도 없다. 사냥은 피곤한 것이고 사자도 웬만하면 안 하고 싶을 것이다. 사자라면 슬슬 돌아다니면서 도처에 널린 풀 이파리나 뜯어 먹으면 되는 소가 오히려 부럽지 않을까?

하지만 인간은 어떤가? 인간의 무한욕망은 단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 걸리적거려서, 과시하려고, 아니면 그저 즐기려고 숲속의 동물을 사냥한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할 줄 알면서부터 지구상의 거대 동물들은 거의 멸종되었다. 물론 인간생존을 위협한 무서운 종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동물사회에서는 결투가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다. 웬만해서는 상대의 목숨을 끊지 않는다. 상대가 엉덩이를 보이는 등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내 항복의 의사를 보이면 결투는 끝나고 그들의 집단은 다시 안정된다. 지나친 경쟁은 서로에게 해가 되므로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가? 인간은 조직적으로 동종을 죽인다. 그것도 대량으로 죽인다. 죽이는 도구는 점점 정교해지고,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인종이 달라서 신앙이 달라서 국적이 달라서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동종을 학살한다.

인간은 신과 동물 사이의 중간적 존재로 자신을 인식해왔다. 원시시대에는 인간이 신에게 가까이 가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동식물이나 자연에 모두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고, 비록 대형동물을 사냥했지만 자신들의 먹잇감이 된 동물들에게 제사를 지내주며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시할 줄 알았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신들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처럼 미워하고 사랑하고 싸우며 살아간다고 상상했다. 신들 사이에 위계도 있고 역할도 다양했다. 그러다가 헬레니즘 문화와 헤브라이즘 전통이 섞이면서 그러한 ‘신’개념은 최고신, 유일신에 대한 숭배로 변해갔다. 그리스도교의 유일신 신앙이 인간의 역사와 문화에 정착하게 되면서 인간이 신을 닮고자 그렇게도 애썼던 때가 중세시기였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인간이 신을 닮고자 염원했던 인간에게 동물의 한 종인 인간임을 자각한 것이 근대의 특징이라고 할 만하다. 특히 요즈음에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생물학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이론이 발전할 정도다. 동종끼리의 전쟁, 타종의 착취로도 성이 안 찼는지 인류는 생명의 터전인 지구조차도 마구 다루었다. 더 이상 지구가 인간을 봐주기 싫어진 모양이다.

인간이 신을 닮고자 하였을 때는 아무리 악한 인간이라도 신을 두려워했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죄책감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동물적 인간’이 치열한 진화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속성들로 위장했다. 신에게서 동물에게로 눈을 돌린 인간의 변명이다.

이제 시선을 한번 돌려 보자. 우리의 관심을 별로 끌지 않았던 존재들에게로 말이다. 지구 표면을 온통 뒤덮고 있는, 바다 속에도 가득한, 식물들 말이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그들은 지구의 시초부터, 우리 인간종이 생겨나기 전부터 이 지구의 터줏대감이었다. 우리는 왜 그들을 잊고 살았는지! 그들은 공룡들이 지구를 점령했던 시절에도 살아남았고 몇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초토화된 땅에서도 다시금 싹을 틔웠다. 아프리카 초원에도 히말라야 산에도 적도에도 바다에도 논과들에도 심지어 거실의 한 모퉁이에도 그들은 오롯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는 별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지만 그들이야말로 이 지구의 진정한 주인인 듯하다. 그들은 긴 세월 장수하고, 죽었는가 싶었는데 다시 부스스 살아난다. 그들은 이동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아주 느리게 움직인다. 그들은 우리에게 산소를 주고 양식을 준다. 그들은 우리에게 약을 주고 꽃을 주고 열매를 주고 씨앗을 준다. 지구상에 식물이 없다면 동물도 인간도 숨 쉬지 못하고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길들여져서 재배되었지만 사실은 그들이 우리를 길들였다. 우리가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그들을 사랑하고 살리고 번식시키도록 그들은 아주 긴긴 시간 동안 우리를 길들여왔다. 인간이 진화의 최고점이라고 자랑할지 모르지만 그 진화는 식물과의 공진화였다. 식물은 어마어마한 존재다. 우리가 이제까지 그걸 알아내지 못하고 무심히 살아왔을 뿐이다. 이제 관심을 식물에게로 돌려 보자.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들의 지혜를 배우자. 그들이 험난한 지구에서 지금까지 살아 낸 것은 우리에게 할 말이 있어서 인지 모르지 않는가? 이제 나무와 꽃들, 풀들, 이파리와 열매들에게 귀를 기울여보자.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의 고민에 대한 조언이, 우리가 닥친 위기에 대한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