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금의 역사 동화] 33, 이성계와 정도전의 전라도 - 귀양은 풀렸으나

2018년 12월 17일(월) 18:16

/그림:선성경

이성계의 서찰을 두 번이나 받고 보니 정도전은 요즘 들어 마음이 급해져서 글을 쓰고 책을 정리하는 일에 더욱 몰두하였습니다. 되도록이면 이곳 나주에서의 일들을 소상히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삼봉어른! 저희들입니다.”

오늘도 세화에서 글을 좋아하는 선비들이 세 명이나 삼봉의 초사를 찾았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너무 누추합니다.”

“고려 최고의 학자이신 삼봉어른의 가르침을 받는데 움막집이면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소재동기’라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감동을 주었던 나주 사람들과의 생활을 보고 느낀 대로 쓴 글입니다.”

“삼봉어른!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이것은 ‘답전부’라고 나주에 사는 농부와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아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적어놓은 책이고 이것은 지난 정월에 쓴 ‘동정에게 올리다’라고 제목을 정한 시 입니다.”

“제가 한번 읊어 보겠습니다.”

하늘이 네 철을 나눠 놓으니/추위와 더위가 다 때가 있다네

정월이라 설도 이미 지나가고 /입춘이 다가오건만

추위는 아직도 위세를 부려 /으스스 살갗에 스며드누나

이역에 묶여있는 오랜 나그네/떨어진 옷에 헌솜이 뭉쳤네

새벽닭이 오래도록 울지 않으니 /밤새도록 부질없이 슬퍼만 하네

“삼봉어른! 언제 새벽이 오고 귀양이 풀리나 하는 심정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귀한 시입니다.”

“아닙니다. 어쩔 때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눈물로 지은 시도 있습니다.”

슬프다. 나의 도는 왜 이리 적막한고/술에 아니 빠지고 무엇 하리오/

글 보다가 흩어진 책 그대로 두고 /술 있으니 스스로 잔 기울이네

세상일 잊자는 것 뿐 만 아니라 /깊이 품은 생각 재가 된지 이미 오래일세

“삼봉어른 이제 때가 다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럼요! 그럼요! 이제 어서 개경으로 올라가셔야지요.”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삼봉어른!”

모두가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멀리해도 그만이었을 텐데 정도전은 새삼 나주사람들의 사랑이 눈물겨웠습니다.

‘이 땅 나주에서의 생활이 끝나가고 있음인가?’

까치가 울면 반가운 일이 일어난다는데 오늘은 유난히 산과 들이 가슴에 새겨 지는 것이었습니다. 앞산 백룡산도 그렇고 불어오는 바람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상처 입은 짐승 같은 사람이었던 나를 이토록 너른 가슴으로 품어준 나주사람들을 내 어찌 잊을까?’

1377년 우왕 3년 정도전의 나이 36세 되던 그 해 가을, 이성계의 도움으로 귀양에서 풀린 정도전은 나주 땅을 떠나 고향 영주로 돌아왔습니다.

이성계는 여러모로 조정에 건의를 해서 정도전이 다시 벼슬길에 오르도록 애를 썼습니다.

“정도전에게 벼슬을 달라구? 어림없지.”

“암요, 아예 개경 땅에 발도 못 붙이게 해야 합니다.”

이성계의 강력한 천거에도 정도전에 대한 벼슬만큼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이인임 일파가 어린 우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자신이 모든 권력을 틀어쥐고 있어서 정도전의 벼슬은 점점 멀어져만 갔던 것입니다.

“조금 기다리면 반드시 벼슬길이 열릴 것이니 낙심 말고 사는 형편을 전령에게 말해주시오.”

이성계는 가끔씩 사람을 보내어 사는 형편을 살펴주었지만 자존심이 강한 정도전은 궁색한 형편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나주에서 3년간의 귀양이 해제가 되고 고향 영주로 돌아왔지만 사는 형편은 오히려 나주에서 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인님 일파의 농간으로 개경에는 발도 못 딛게 하는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이 고향땅 영주에 머물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