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종환 |
| 2019년 01월 06일(일) 17: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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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 택배상자가 가득합니다. 종이박스, 플라스틱 박스, 바퀴달린 캐리어 등등, 종류도 다양하고 크기도 제각각입니다. 방학을 맞아 집으로 내려가거나 그동안의 학숙생활을 마치고 떠나는 학생들이 집으로 보내는 물건들입니다. 몇 백개의 서로 다른 삶의 흔적들이 그만큼씩 다른 무게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은평관이 개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만큼 지극히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들이 지내온 학숙에서의 시간들이 앞으로 많은 날들을 살아갈 때 좋은 경험이 되기를 바랍니다.
“학교 갈 때 아이들은 걸어간다. 집에 갈 때 아이들은 뛰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학숙도 그런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숙도 돌아오는 길이 즐거워야 하는 곳입니다. 실제 학생들의 생활은 매우 역동적이어서 도서관, 동아리, 학원, 아르바이트 등을 거치느라 정말 바쁘게 삽니다. 학생을 만나려면 며칠씩 기다려야 하고 그것도 밤에 들어와서야 가능할 때가 보통입니다. 집은 이렇게 바쁘고 고단한 하루를 정리하면서 편하게 몸을 맡길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은평관은 통금이 없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을 찾았는데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로 문을 열어주지 않는 부모님은 안 계실 것이라는 그런 생각으로 통금을 실시하지 않습니다. 물론 외박을 하게 될 때는 미리 연락을 해야 합니다.
또한 집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때로는 부모님과도, 친구들과도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는 게 객지생활이라서 필요할 때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고자 했습니다. 그렇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연말 실시한 ‘학숙생활 만족도 조사’에서 여러가지 의견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멘토의 필요성 이었습니다. 올해도 역시 고민하는 내용들을 잘 들어주고 도움을 주실 분들을 계속 찾을 계획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사생 층별로 담당 선생님을 지정해서 1차 면담을 실시하도록 하고 좋은 관계를 맺어나갈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청년이 떠나는 광주를 걱정하는 분들도 계시고, 고향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는데 외지로 나가는 학생들까지 지원을 해야 하느냐고 글을 쓰는 분도 계십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은 농사를 지어 한가족 한동네가 먹고사는 농경사회가 아닙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어느 기업인의 말을 굳이 인용할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우리 자식들이 더 넓은 세계로 나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오히려 장려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굳이 우리나라 교육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홍익인간 이념까지는 아니더라도 민주국가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 할 수 있다면 한 개인으로서나 지역으로서 그만큼 자랑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광주에서는 그렇게 될 수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만 이제는 광주도 인재를 키우고 또한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일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겠습니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지역출신 학생을 30%까지 채용하게 되고 한전공대까지 설립이 됩니다만 외형을 갖추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인재를 귀하게 여기고 이들을 진정으로 돕는 일에 나서자는 것입니다.
광주과학기술원 출신들이 광주에서 얼마나 인정을 받고 있는지, 광주의 자랑거리라고 말하는 시민들은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인재를 우대하는 분위기, 어려움 없이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리콘밸리를 만들고 싶어하는 도시는 여러 곳 있으나 제2의 실리콘밸리는 아직 생겨나고 있지 않다는 말은 생태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인재유출을 걱정하기 보다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때라는 것을 생각했으면 합니다.
올해 대입일정이 마무리되어 가면서 남도학숙 입사지원도 시작됐습니다. 학숙은 학생들의 서울생활, 대학생활의 시작을 함께하는 만큼 고민이 많습니다만 무엇보다 홀로 남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