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밖 화가들] 렘브란트 반 레인 궁핍·고독, 불행했던 末年…한줌 예술적 갈망으로 ‘명작 탄생’ 예술과 돈, 경계에 선 화가

2019년 02월 14일(목) 18:14

렘브란트 作 ‘야경’

1656년 7월, 나이 쉰의 렘브란트는 결국 법원으로 가는 발걸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자신의 파산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20여년 전을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집도, 그동안 수집했던 모든 진귀한 것들도 모두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서른셋이던 1639년, 렘브란트는 그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듯 암스테르담의 부호들이 사는 곳으로 당당히 들어갔다.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된 호화로운 저택을 매입했다. 무려 1만3천길더(약 13억원)정도의 집이었고 비록 ¼만을 지불했지만, 밀려드는 그림 주문과 자신의 인기를 생각하면 잔금이야 언제든 모두 감당할 수 있었다. 그림 실력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었고, 나이도 이제 갓 서른을 넘겼기에 앞으로 그림을 그려갈 시간들을 생각하면 자신 스스로가 가장 확실한 담보였다.

초상화 한 점만 그리더라도 500길더(약 5천만원)는 거뜬했고, 이마저도 주문이 밀려있었다. 이미 계약 완료된 그림, 그리고 또 거래가 성사돼 가는 그림, 소문을 듣고 그림을 배우려는 문하생들까지 있었다. 일 년에 무려 100길더(1천만원)에 가까운 돈을 수강료로 내겠다는 문하생들이 줄을 지었고, 여러 점 찍어낼 수 있는 판화도 ‘100길더 판화’라 불리며 웬만한 화가의 유화보다 비싼 가격으로 수없이 팔려나갔다.

1647년엔 재산이 거의 4만 길더(40억원)에 달할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집의 잔금 따위는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뛰어난 예술적 기량이 가져온 호화로운 생활은 렘브란트를 더욱 더 과욕의 늪으로 끌어당겼다. 그림 속 정물로 사용하기 위해 진귀한 물건들도 많이 사들였다. 악기며 골동품 도자기, 가구, 의류 등 다양하고 신기한 물건들, 다른 화가의 그림까지도 살 정도였다. 그림을 그리고자 한 것도 있었겠지만 소비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물건들도 넘쳐났다. 루벤스의 그림은 다시 되팔며 이익을 남기기까지 했다. 화가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전부가 아닌 부동산 투자와 다양한 재테크에도 눈을 돌리며 무절제한 소비는 계속됐다. 당시 네덜란드의 경제시장도 꽤 괜찮았기에 모든 것들이 잘 맞아 떨어졌고, 자신의 운명은 그렇게 탄탄대로일 것이라 확신했다.

렘브란트 作 ‘자화상’ (63세·1669년)

허나 1650년을 기점으로 네덜란드 경제는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고, 1652-1654년 영국과의 전쟁은 하락의 속도에 날개를 달게 했다. 끝을 알 수 없게 올라만 가던 렘브란트의 인기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그림 주문은 고사하고 미술시장과 평론가들에게서 비판이 쏟아졌다. 그럴수록 렘브란트는 자신의 그림에 대한 생각들을 고집스럽게 붙잡았다. 잘 나가던 화가는 왜 그렇게 한순간에 추락했을까.

‘야경’(1642, 원제는 프란스 바닝 코크 대장의 민병대 단체 초상화)은 렘브란트의 정점이자 몰락의 시작이었다. 저택을 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민병대 대장인 프란스 반닝 코크는 렘브란트에게 집단 초상화를 주문했다. 당시 돈으로 1천600길더(약 1억6천만원), 부르주아들이 단체로 주문하던 집단 초상화였다. 단체 초상화는 말 그대로 여러 인물의 모습이 한꺼번에 다 그려진 그림이다.

렘브란트는 자신만의 그림에 대한 남다름과 욕망, 한껏 부풀어 오른 자신감,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기량 그 모두를 더해 오로지 자신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으로 단체 초상화를 그려나갔다.

단체 초상화만 아니라면 기가 막힌 그림이었다. 깃발을 든 병사를 출발점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마치 그림이 아니라 눈앞의 무대가 펼쳐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북이 울리는 소리, 출정을 앞둔 사람들의 한껏 부분 기대감까지 모든 오감을 끌어올리는 가히 최고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허나 이 모든 것은 등장인물과 상관없는 이들의 생각일 뿐, 그림은 주문에 의해 그려진 것이었다. 주문했던 당사자들에겐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똑같은 돈을 지불하고 의뢰한 그림에서 누군가의 얼굴은 옆모습만 보이고, 또 누군가는 앞사람의 팔에 가려 다 보이지도 않고, 어둠 속에서 희미한 흔적만 보이는 얼굴까지. 게다다 알지도 못하는 상상의 인물까지 그려져 민병대원들의 불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림을 고쳐주기는커녕 자신의 그림에 대한 고집을 놓지 않았기 때문인지 최고의 화가라 찬사 받던 그를 향한 발걸음은 뚝 끊어지기 시작했다.

렘브란트 뮤지엄.

렘브란트의 그림 실력은 이미 20대에 완성의 경지에 올랐었다. 그에겐 남들과는 다른 그 무엇이 항상 꿈틀댔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들뿐만 아니라 누추하고 보잘 것 없는 모든 것들도 가감 없이 그림 안으로 들어왔다. 인물의 표정, 태도, 시선 등 여느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그림을 그려내려 했다. 주문자의 마음을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모든 그림들이 특별한 예술이고자 했다.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는 중 아내 사스키아가 세상을 떠났고, 집안일을 도와주던 헨드리케와의 염문으로 주변의 비난과 멸시는 더욱 커져갔다.

결국 그토록 사랑하던 아들 티투스와 헨드리케마저 세상을 떠나고 빈민가에서 방황할 때에도 렘브란트는 그림에 대한 고집을 내려놓지 않았다. 손아귀에 쥔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졌어도, 당장 배고픔을 채우지 못해도 자신만의 그림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경제적 파국으로 삶은 누더기가 됐지만, 그럴수록 깊어지는 예술적 갈망은 더 많은 명작들을 탄생케 했다. 생애 마지막 시기에 그려진 자화상 두 점, ‘제욱시스로서의 자화상’(1668년경 62세)과 ‘자화상’(1669년 63세)에는 렘브란트의 고단했던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 의기양양하고 패기 넘치는 젊은 화가는 온데간데없고, 하루하루의 삶을 겨우 버텨내는 절망스럽고도 한탄스러운 한 인간의 고요한 절규가 고스란히 그려졌다.

문희영 <예술공간 집 관장>

아이러니하게도 렘브란트의 과시욕을 충족케도, 추락의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 그 집은 현재 렘브란트 미술관이 됐다. 서거 350주년이 되는 올해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렘브란트 작품 400여점을 모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라 한다.

돈이 안겨주는 호사스러움도 참혹함도 모두 겪어냈지만, 화가로서 예술적 영혼만은 흔들리지 않았던 렘브란트 덕분에 우리는 찬연한 그의 작품과 마주할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