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앞에 놓인 두 개의 이념논쟁 박대우 |
| 2019년 02월 14일(목) 1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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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9월 8일, 당시 통일민주당 고문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16년 만에 광주를 찾아 망월동 5·18묘역에서 유가족들을 끌어안고 통곡했다. 두 차례의 해외 망명과 군부정권에 의한 사형선고, 5년 5개월 동안의 수감 생활 등 오랜 시련 끝에 광주를 찾은 김대중의 눈물은 이후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정치적 자산이 됐다. 그리고 이날 각지에서 모여든 수십만 시민들의 함성으로 울려 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의 정신으로, 나아가 민주화의 가치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집권 2년차였던 2009년 5·18민주화운동기념식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이 공식 식순에서 제외되기 시작했다. 많은 논란과 국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조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유지됐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다분히 정치적 손익이 반영된 것이었다. 정치적 우위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상대의 정치적 기반을 무너뜨려야 한다. 더구나 상대의 기반을 무너뜨리면서 자신들의 지지세를 일거에 결집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바로 이념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5·18 광주’를 통한 이념논쟁이었다. ‘5·18 광주’야말로 이념의 프레임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경계선이기 때문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의 일부 정치인들이 근거도 없고, 어이없는 북한군 개입과 5·18 유공자에 대한 논쟁을 시작하는 이유는 불 보듯 뻔하다. 일차적으로는 지역감정을 건드리고, 결과적으로는 좌우의 편 가르기를 통한 표의 결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를 자르듯 명명백백히 사실을 밝힌다 해도 얻는 것에 비해 안아야 할 상처가 너무 클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위태로운 시기에 또 하나의 민감한 화두가 날아들었다. 요점만 정리하자면 “한국은 전화 몇 통으로 5억 달러를 더 내기로 했고, 앞으로도 수년에 걸쳐 더 많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내야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그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발언은 당장 상반기에 시작될 새 협정 체결에서 미국의 인상 압박으로 나타날 것이 자명하다.
대한민국과 미국은 올해 적용될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을 사실상 끝냈다. 2월 10일에 끝낸 합의 내용을 살펴보면 유효기간은 1년으로 하고, 지난해 부담했던 9602억원보다 787억 원 증액된 1조389억원을 부담하기로 했다. 당초 미국의 요구했던 1조4천억원보다는 적은 금액으로 합의했으니 나름대로 만족할만한 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협정서에 서명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인 2월 12일, 불과 이틀 만에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발언이 등장한 이유이다. 더구나 각료회의에서 이 같은 주장을 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셧아웃 사태의 장기화로 입지가 좁아진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 발언이라거나, 그가 제시한 금액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식의 보도를 내놓고 있다. 다가오는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미국의 사전 포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주한미군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금액의 수치로 가늠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주한미군이 대한민국에 주둔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 미 군정시기부터였다.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2만8천500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유사시에는 대규모 전력이 증원되는 계획에 따라 한반도 문제에 직접 관여하는 미군 장병들의 숫자가 10만여명으로 불어난다. 특히 중국과의 사드(THAAD)갈등에서 나타난 것처럼 군사적 요인이 경제적 파장은 물론이고, 나라 전체의 이념대결로 치달을 확률이 대단히 높은 상황에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협상의 내용과 결과는 엄중한 사안이다.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남북협력과 평화체제 구축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는 대한민국의 주요한 아젠다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진보 진영에서는 군비축소와 병력감축, 더 나아가 주한미군의 감축과 단계적 철수까지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지닌 진영에서는 미국과 일본을 연계하는 강력한 방위체계를 주장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소위 ‘공정한 부담’은 협상에 나서는 정부의 입장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남북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