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하나PD의 보통날]당신 인생의 우연 정하나 광주시립교향악단 공연기획담당 |
| 2019년 02월 18일(월) 1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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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로 하여금 다양한 음악이론을 놀이와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하고 그렇게 음악적 감각을 익힌 어린이들이 구음이나, 그림, 몸짓 때론 언어로 표현한 음악(또는 음악으로 곧 부화할 무언가)을 작곡가가 서기가 돼 악보로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렇게 탄생한 음악을 광주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이 무대에서 연주해 주고, 어린이들은 작품번호 1번을 세상에 발표한 어엿한 꼬마작곡가로 거듭나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었다.
1년동안 진행을 하면서 50여명의 어린이를 만났는데, 물론 모든 어린이 마음속에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적어도 그렇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속에 음악을 품는 것과, 그것을 자신의 표피 밖으로 꺼내어 놓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자기 마음속의 이야기를 잘 듣고, 개념에서 동력으로 형상화 하고, 타인에게 전달한다. 거기엔 집중력, 독해력, 창의력에 더해 용기까지 필요하다. 쉬운 일이 아닌데, 대부분의 어린이는 이 어려운 일들을 사뿐히 해냈다. 에곤실레는 ‘예술가라면 영원히 어린아이가 돼야 한다’고 했는데, 아무튼 어린이는 참 대단한 존재다. 물론 어느 한 단계에 사로잡혀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럴 땐 작곡가 선생님들도 같이 진땀을 흘려야 했다.
꼬마작곡가들이 창작의 고통에 빠져있을때, 작곡가 선생님들은 가방에서 주사위를 꺼내곤 했다. ‘갑자기 주사위는 왜? 잠시 게임을 하면서 쉬었다 가려는 것인가?’ 싶을테지만, 그 순간 이 주사위가 가장 강력한 작곡 도구가 된다. 주사위를 한 번 던져 음계를 정한다.
그리고 또 한 번 던져 그 음을 얼마나 지속할지를 정하고, 또 다시 던져 거기에 어떤 분위기를 덧입힐지도 정한다. 주사위 놀이를 여러 번 반복하는 사이 답보상태이던 악보에 길이 열린다. 어느새 악보가 몇 마디 앞으로 전진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사위에 중독돼서는 안된다! 서기(를 자처한 작곡가들)선생님이 적절한 순간에 은근슬쩍 주사위를 거둬들이고. 그러면 꼬마작곡가들은 본인이 내던진 주사위가 가리킨 방향에 따라 다시 자신의 의지로 한 마디 한 마디 전진해 나갔다.
이렇게 작곡이나 연주에 우연성이나 즉흥성을 가하는 음악을 ‘우연성 음악’이라고 한다. 우연성 음악의 대표 작곡가로 20세기 미국작곡가인 존 케이지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동전을 던져 선택된 음고, 템포, 다이내믹을 작품에 그대로 반영했다(꼬마작곡가와 꼭 같이).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우연성 음악을 대표하는 ‘주역음악’이다.
존 케이지는 창작과정에서의 우연성을 넘어 연주과정에서의 우연성도 시도했다. ‘4분 33초’는 연주자가 무대에 나와 4분 33초 동안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는 작품이다. 존 케이지는 무대 위의 침묵, 관객의 수근대는 소리, 피아노 덮개를 열고 닫는 일련의 소리들을 모두 음악으로 간주했다. 그는 ‘예술의 목적은 매일 매일의 일상적 삶과 예술의 구별을 흐리게 하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전통적 미학에 도전장을 낸 그에게 우연은 중요한 철학적 대안이었을 것이다.
우연성 음악이 다양한 현대음악 시도의 하나로 이해되곤 하지만, 현대에 발명된 아주 획기적인 개념인 것만은 아니다. 존 케이지로부터 200년 전, 모차르트 역시 우연성 음악을 작곡했다. 모차르트는 미리 170여개의 독립적인 음악마디를 만들어 놓고, 주사위를 던져 무작위로 16개 마디를 선택, 배열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 방법에 따르면 누구나 자신만의 미뉴에트를 만들 수 있다. 첫 번째 마디에 올 수 있는 경우의 수가 170개이니, 16마디까지 계산해 보면 이 방법을 통해 만들 수 있는 미뉴에트의 수가 몇천억개가 넘는다. 모차르트는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천재 모차르트라면 아마 재미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이성이 지배하는 세계 그 중심에 살았던 모차르트, 더욱이 이미 완성형의 음악을 머리 속에 한아름 품고 있던 그에게 우연은 그저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었을까.
다시 꼬마작곡가로 돌아와서. 매일 새로운 날을 살아가는, 오늘과 내일이라는 오선지에서 언제나 초보자인 나는 꼬마작곡가다. 그런 나에게 우연은 대단한 철학적 개념도 아니고, 갖고 놀 수 있는 놀이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한 번씩 우연에 몸을 실어보지만 너무 오래, 자주라면 곤란하다. 우연이 열어준 방향에 따라 다시 의지를 갖고 맥락을 찾아가야 한다. 가끔 우연과 우연이 만나 인과가 된다면 신기하거나 참 반가울테고, 그 맥락이 적절히 아름답게 연주된다면 더없이 좋을테고. /정하나 광주시립교향악단 공연기획담당
정하나 광주시립교향악단 공연기획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