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많은 증거에도 사실 확인 어렵다” 번번이 기각 ‘분통’ 5월19일 계엄군의 곤봉세례에 한쪽 눈 잃어 최환준 기자 |
| 2019년 05월 23일(목) 19:50 |
“1980년 5월, 금남로에서 계엄군의 곤봉에 머리를 수차례 얻어맞은 후유증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습니다. 광주시민의 대표는 아니었지만, 5·18의 중심에는 시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광주에 거주하는 권모(80)씨는 5·18민주화운동 보상을 신청했지만 번번이 기각 당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당시 광주 서구에서 부동산과 건설업을 하던 권씨는 80년 5월19일 동네후배의 권유로 사무실 밖을 나가 금남로 5가 한일은행 4거리에 도착했고, 학생들은 중앙극장 앞에서 경찰과 대치중인 상황이었다.
그 순간 현대극장 방향에서 달려온 트럭에서 계엄군이 뛰어내려 학생뿐만 아니라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인근 대성약국 2층 대성다방내로 피신했는데, 그곳까지 쫓아온 계엄군에게 결국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고 말았다.
그는 “계엄군 한명이 어깨를 붙잡고 발로 수회 걷어차고, 곤봉으로 머리 정수리와 뒷부분을 여러 번 맞아 기절을 했었다”며 “피가 너무 많이 흘러 함께 있던 후배는 내가 죽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구급차도 부르기 어려웠던 상황상 어쩔 수 없이 후배의 부축으로 집으로 향했던 권씨는 그 후유증으로 왼쪽 눈이 서서히 시력을 잃어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은 상태에 이르렀고, 시각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광주시는 지난 4차 심의에서 ‘부상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전무하다’는 등 객관성이 결여됐다며 권씨의 서류를 기각했다. 유공자로 인정되기 위해선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를 거쳐야만 한다.
이후 광주시의 통보는 재심청구를 하라는 것. 이에 5차에 재심청구를 했으나, 당시 심사하는 분과위원들이 전원 사퇴함에 따라 5차 신청을 철회하고 6차 때 다시 신청하라는 안내문을 받았다.
권씨는 “5차 신청을 철회하면 청문 기회도 준다고 했지만, 그 기회는 커녕 4차 심의와 똑같은 방법으로 기각됐다”며 “지난 2004년 심사결정서에는 증언한 분들의 내용이 서로 상이하다는 통보를 받았고, 그들의 사인 역시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이유로 검은색 펜으로 볼 수 없도록 지워버렸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계엄군에 피해를 당한 사실을 증빙하기 위해 자신과 함께 있었던 인우보증인 진술부터 사업소, 거주지 동장, 관할경찰서지구대장 소속팀장, 관할경찰서 서장, 관할시장, 군수에 이르기까지 사실관계를 확인받아 제출했다”면서 “더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하냐”고 되물었다.
이 과정에서 권씨는 “이 정도 서류면 심의에서 통과했을 것인데, 잘못된 것 같다. 현재 7차 보상이 끝났으니 8차 보상 신청 때 꼭 신청하시라”는 공무원의 얘기를 듣기도 했다고 전했다. 권씨는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청와대에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 광주시 관계자는 “광주시장이 위원장을 맡아 총 15인 이내로 구성된 보상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라며 “탈락한 이유 역시 개인정보법상 알려드리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5·18 39주년, 계엄군에 폭행당한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유공자에서 제외된 권씨와 같은 피해자들은 그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제는 세월의 무게만큼 그날의 증거를 나 홀로 수집하고, 입증 책임까지 지우기에는 어려운 상황. 이에 따라 가해자인 국가가 한 분의 유공자라도 더 찾아 위로할 수 있도록 직접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5월 단체 관계자는 “국회에 현재 계류 중인 보상 신청 관련 법 개정안이 하루 속히 국회를 통과해 8차 보상 신청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6·25전쟁 유공자 신청처럼 어느 때든지 상시신고를 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환준 기자
최환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