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주민주권이 필요하다 김병도 |
| 2019년 06월 18일(화) 1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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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국가주권시대의 산물인 국민을 초등으로 바꾼 것이다. 당시 우리는 국가에 충성하고 헌신하는 사람을 국민으로 칭했다. 국가를 중심으로 국민 개개인이 국가 성장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을 당연시하는 시대였다. ‘국민’학교는 국가주권시대 유물이고 이제는 박물관에서 쉬어도 괜찮을 것 같다.
한국은 해방 이후, 건국,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면서 성장해왔다. 수많은 갈등과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부지런하고 똑똑한 국민들의 희생과 노력에 힘입어 배고픔을 해결했고 민주화를 이뤄냈다. 국가 초기단계에는 국가주권을 강조하게 마련이다. 국가주권시대에는 국가가 그 무엇보다 앞선다. 국가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일한 결과 우리는 풍요로운 결실을 맺었다. 위대한 국민이 이뤄 낸 결과다.
그러나 현재 우리사회 수준에서 국가주권의 한계는 명확해 보인다. 어린이가 어른이 되면 어릴 적 옷을 그대로 입고 살아갈 수 없다. 어른에게 맞는 옷으로 바꿔 입어야 한다. 만약 어른이 어린아이의 옷을 입고 다닌다면 우스꽝스럽게 보일 것이다. 사실 성장과 함께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국가주권시대의 결실을 이제는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변화해야 한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개개인의 이해와 요구가 다양해지고 그 수준 또한 매우 높다. 지금 우리에게 주민주권이 강력히 필요한 이유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6남매를 포함한 많은 식구들이 함께 살았다. 가족들은 주어진 식탁에 감사해 하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맛있게 먹었다. 오직 목표는 배불리 많이 먹는 것이었다.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지금 우리 집에는 아들이 셋이 있다. 휴일에 라면을 먹을 때 새삼 많은 것을 느낀다. 큰 아이는 맵고 계란이 들어간 라면, 둘째 아이는 담백하고 계란이 들어가지 않는 라면, 셋째 아이는 부드럽고 계란이 반숙 상태인 라면을 좋아한다. 아내는 이렇게 까다로운 아이들의 입맛을 다 맞춰낸다. 신기하기 그지없다. 참 많은 것이 변했다. 어릴 적 내가 음식투정을 했었더라면 밥상머리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반대로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주는 대로 먹으라고 하면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도 엄마를 폭군이고 독재자라고 할 것이다. 주면 주는 대로 먹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가만히 있어야 하는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화는 필요의 산물이다. 국가주권 또한 필요의 산물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중심(국가주권)에서 국민중심(주민주권)으로의 변화를 꾀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눈부시게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변화를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 한다면 우리의 발전은 여기까지 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전통문화에 풍류(風流)가 있었다. 이를 현묘지도(玄妙之道)라고 불렀다. 사람의 길, 자연의 길 모두 변화의 흐름을 따라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중앙집권과 자치분권은 모두 인간이 만든 제도들이다. 다만 국가주권시대에는 중앙집권이 주민주권시대에는 자치분권이 더 어울리는 제도다. 지금 우리사회에 주민주권이 간절히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