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운동 100주년의 국격 이종환 |
| 2019년 07월 14일(일) 1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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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꺼내 든 수출규제가 이슈다. 원인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도 나오고 있지만 어쨌거나 우리산업의 핵심을 일본이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건 사실인 것 같다. 몇 년 전 ‘서울공대 26명의 석학이 던지는 한국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언’이라는 부제의 책이 대단한 반향을 몰고 왔다. 눈부신 속도로 압축 성장을 이루어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발전을 이끌어온 우리 산업의 이면에서 제기되는 문제, 즉 성장잠재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 그리고 새로운 산업군과 기업의 부재를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삼성반도체가 1992년 D램 분야에서 일본 도시바를 제치고 세계 1위 메이커로 올라 섰다로 시작하는 이 책의 결론은 대체로 이렇다. 우리산업이 압축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경험을 축적하기보다는 선진국으로부터 개념을 받아 온 후 실행하는 것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왔고, 그 모델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지금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산업이 겪고 있는 경쟁력의 위기는 언젠가 한 번은 꼭 겪고 넘어갈 수 밖에 없도록 예정되어 있던 관문이자 성장통이라고.
금년 3월 한 언론은 ‘제조업 강국이라는 한국, 알고 보니 일본산 로봇에 의존. 삼성, 갤럭시 제작 위해 1억원짜리 화낙 제품 2만대 주문’이라는 기사를 올렸다. 세계에서 산업용 로봇 이용률이 가장 높기도 하거니와, ‘일본의 소재·부품을 사서 일본산 기계로 대량 생산해 일본을 넘어선 게 우리의 경쟁력이었다는 것, 우수한 인재들이 밤낮없이 공정기술을 연구해 일본 경쟁사보다 수율은 끌어올리는 것이 성공방정식이었다’ 라는 것이 이 기사의 요지이다. 그리고 ‘산업용 로봇분야의 일본의존이 한국의 미래 제조업 경쟁력에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로 끝을 맺었다.
대일본 무역적자는 어떨까.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뤄진 1965년 이후 지난해까지 50년이 넘도록 단 한 차례도 무역수지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고 누적 적자액은 700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지난해 무역적자 2, 3위 국가는 원유수입국이다. 물론 그동안에도 일본의 부품·소재 기술력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수입선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계속되어 왔고, 정부는 부품소재 국산화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왔다. 그럼에도 현실은 기대했던 취지를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일본상품을 사지 않겠다고 팔지도 않겠다고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산업의 현실을 알게 됐으니 오히려 다행인가 싶다. 그렇지만 역시 이번에도 어려움을 짊어지겠다는 계층은 다름 아닌 서민들이다. 대자본에 밀려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지급하기도 어려운 편의점들이 중심에 서있다. 1907년 대구에서 일어났던 국채보상운동이 중첩된다. 분연함에서 시작한 작은 움직임들을 펨훼하지 않았으면 한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다. 일제의 억압에 항거한 선열들의 희생을 되새긴 지 불과 반년도 지나지 않았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판결을 문제 삼는 국가의 자존심이 무시되는 - 이 상황에서도 정부를 탓하는 일부 인사들, 당사자인 기업들, 그를 옹호하는 단체들의 처신을 보면서 안타까움보다는 ‘이이제이’가 떠오른다. 어느 일본인 작가가 언급한 글로벌 자본주의와 국민국가의 이익이 상반되는 사태라는 글이 생각나 적어본다.
일본의 대기업들은 거의 다 글로벌화 되었거나 되어가고 있다. 그런 기업은 더 이상 자국민들의 일자리 창출이나 지역사회에 대한 지원, 조국의 국익 증대에 관심이 없다. 글로벌 기업은 요구한다. 법인세율을 낮추고, 노동자 임금을 낮추고, 공해 규제를 완화하고, 원자력 발전으로 전력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사회적 인프라를 위해 국비를 지출하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기겠다고 한다. 그 결과 국민국가에 대한 귀속의식이 없는 기업일수록 국민국가로부터 많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다는 도착된 법칙이 성립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