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나PD의 보통날]오케스트라의 역습 2 정하나 광주시립교향악단 공연기획담당

2019년 08월 19일(월) 18:20

오케스트라를 이해하는 중요한 정보중 하나는 오케스트라가 연주자들의 집단이며 그들 집단의 산출이라고 할 수 있는 공연은 (연주 행위라는)순수한 노동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을 공연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현악기 연주자의 숫자를 무리하게 줄이지 않는 한) 80여명의 연주자가 40여분간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해야 한다. ‘하나의 심포니를 관객 앞에서 연주한다’는 아웃풋을 위해서 언제나 80여명의, 40분간의 정직한 노동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타 예술 장르를 포함한 여타 산업분야와 비교했을 때 오케스트라 공연행위(또는 운영행위)가 갖는 가장 특수한 지점이다. 대부분의 산업은 시간이 지나고, 문명이 발전 할수록 노동생산성이 높아진다. 노동생산성이란 투입된 노동량과 그것에 의해 얻어진 생산성과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다. 대부분의 경우 노동과 산업을 둘러싼 환경, 예를 들면 노동자의 숙련도나 기술 환경이 점점 발전하기 때문에 한 분야의 노동생산성은 대부분의 경우 높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공연예술 중에서도 특히 오케스트라는 세월이 갈수록 노동생산성이 점점 떨어지는 특이한 지형을 갖는다. 차이콥스키가 교향곡 5번을 초연했던 1888년에도 80여명의 노동이 필요했고, 2019년 지금 같은 곡을 연주할 때도 똑같이 80여명의 연주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노동자(연주자)들의 임금은 점점 높아지기 때문에 생산성은 점점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의 공연행위로 이뤄지는 다른 공연예술분야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공연예술분야에서 무대 장치를 간소화 하거나 공유하는 등 운영상의 해법으로 돌파구를 찾아가는 반면, 대규모 연주자의 연주행위가 주가 되는 오케스트라 연행방식에서 노동생산성을 높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지난 5월, 타이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창단 50주년을 맞아 개최한 ‘아시아 오케스트라 총회’에 참석했다. 아시아 지역의 20여개 오케스트라 운영진이 모여 각자의 운영 현황과 최근 이슈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모든 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물론 오케스트라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각 오케스트라의 해법은 주로 3가지 방법으로 수렴됐다.

먼저 노동력을 높이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에서 노동력이란 연주자들의 연주 실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연주자 개인의 노동력을 높이고 오케스트라의 전체적인 매력도가 높아진다면 더 많은 관객들에게 더 높은 입장료를 설득할 수 있게 된다. 달성하기 까다롭지만 선결되어야 하는 필수적인 방법이다.

다음으로 노동 투입량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오케스트라 운영의 새로운 돌파구로 비정기적 오케스트라(일명, 텔레폰 오케스트라)가 늘어가고 있지만 최후의 보루까지 우리의 기준은 정규 직업 오케스트라가 돼야 할 것이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월급을 받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공연 횟수를 늘려 노동의 투입을 높이는 것이 생산성 증대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총회에서 만난 대부분의 아시아지역 오케스트라에서 연 100회 이상 공연을 실시하고 있었으며, 국내 오케스트라도 공연 횟수를 꾸준히 늘려가는 추세다. 한 오케스트라가 연간 소화 가능한 공연에 물리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 방법은 어느 수준에 도달해 효과를 잃겠지만, 역시 어느 수준까지는 지향 가능한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밖에 아트상품을 판매하거나 공연 이외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법이 최근 시도되고 있다.

그보다 한 달 앞서 도쿄에서 만났던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대표 사이먼 우즈는 오케스트라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새로운 접근법을 공유했다. 시민사회를 향해 지속적으로 오케스트라의 사회적 역할과 그 수행에 대해 메시지를 발신하고 속한 사회 내에서 공공재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LA필하모닉은 유료음악회 이외에 연 100회 이상의 무료·사회공헌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으며, 소외계층 청소년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YOLA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LA필하모닉은 곧 LA이다’라는 모토아래 다양성도시로서 LA의 모습을 상징하는 오케스트라를 표방하며 전체 출연자의 50%를 여성, 유색인, 장애인 출연자들로 유지하고 있다. 5천억원에 이르는 LA필하모닉의 연간예산 중 상당부분은 기업출자 및 시민후원으로 조성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꼭 필요한 존재로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노동력과, 노동 투입량을 시민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린 후 취할 수 있는 새롭지만, 근본적이 될 대안이다.

연장선상에서 아시아 오케스트라 총회에서 만난 싱가폴 심포니 오케스트라 부지휘자인 조슈아 탄의 이야기를 약급할 필요가 있겠다. 그의 이야기는 다소 감상적이었지만, 모두의 고개를 주억이게 했다. 지금 가장 필요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인간적인 교감, 인간미라는 것이었다. 연주자들이 관객들과 더 자주 인사하고 소통하며,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초대하는 이웃으로서의 역할을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성을 쉬이 향상시키기 힘든 노동집약적인,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이라 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라는 특수한 세계에서 그 전통법이 정통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하나 광주시립교향악단 공연기획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