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자의 왕조음악 컬렉션](完)문화의 꽃을 피운 ‘정조대왕’ 아버지 ‘사도세자’ 향한 애틋함, 경모궁제례악 탄생시키다

2019년 09월 18일(수) 18:20

문화 번영으로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추모하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경모궁제례악’을 탄생시켰다. 사진은 국립국악원의 제례악 연주사진. /국립국악원 제공

정조는 조선의 제22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1776년-1800년까지 24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

사도세자(영조의 둘째 아들)와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1752년 9월22일 태어났다. 1762년(영조 38), 정조의 나이 11세 때 생부인 사도세자(思悼世子)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했다.

정조는 울면서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이성을 잃은 영조는 물론이고 집권 세력인 노론들은 그런 정조를 외면했다.

당쟁의 희생양이 된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죽음은 조선의 역사상 가장 가슴 아픈 역사의 기록이다. 사도세자(思悼世子)가 죽자 정조는 영조의 큰아들 효장세자에게 입적됐고 1776년 3월10일 영조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랐다.

그의 나이 25살 이었고 즉위 첫날 정조는 대신들을 향해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말하며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추숭작업을 서둘렀다. 사당을 지어 ‘경모궁’(크게 사모한다는 뜻)이라고 불렀으며 재위 기간 중 13차례에 걸쳐 현륭원(사도세자 무덤)에 능행했다. (※서울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지금의 수원 남쪽 화성으로 이장하고 현륭원이라 이름 붙임)

경모궁제례악(景慕宮祭禮樂)이란 정조가 비운으로 죽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위해서 만든 제례악이다. 악장(樂章)은 1783년(정조7)에 이휘지(李徽之)가 만들었고 뒤에 남공철(南公轍)이 개찬하였다. 비운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추모를 위해 국가적인 의식으로 제를 올렸고 이를 위해 악기를 새로 만들고 악장(樂章)을 찬정하게 하는 등 음악과 의식 절차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다.

정조 때 편찬한 악서로 음악의 원류와 이론, 악기의 모습과 연주 배치 방법을 적은 책인 ‘시악화성’(왼쪽)과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에서 제사를 지낼 때 의식을 기록한 책인 ‘경모궁의궤 권1악기도설’(樂器圖說)./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연주곡은 모두 7곡으로 종묘제례악인 ‘보태평’과 ‘정대업’ 중에서 발췌, 편곡해서 만든 음악이다. 어휴곡(於休曲), 진색곡(震索曲), 유길곡(維吉曲), 혁우곡(赫佑曲), 독경곡(篤慶曲), 휴운곡(休運曲), 휘유곡(徽柔曲)의 7곡이다.

이곡은 ‘보태평’과 ‘정대업’의 시작과 끝부분은 그대로 두고 그 밖의 부분을 축소시켜 만들었으며 7곡은 쓰임에 따라 희운지악(熙運之樂), 융안지악(隆安之樂), 숙안지악 (肅案之樂) 등으로 불리고 있다.

종묘제례악을 축소시킨 이유는 세자의 신분이었던 사도세자에게 조선의 왕들에게 바치는 곡을 그대로 연주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1899년(고종36·광무3) 사도세자가 장조(莊祖)로 추존(追尊)되어 그 신위가 종묘로 옮겨지자 경모궁제례는 폐지돼 일무(佾舞)와 악장(樂章)은 현재 전하지 않고 그 악보만 ‘속악원보’(俗樂原譜)에 전한다. 이 곡의 시작과 끝의 절주 방식과 사용되는 악기는 종묘제례와 같다.

현재 제례 의식은 폐지됐지만 음악은 국립국악원에 의해 보존돼 최근 2019년 9월 5일 국립국악원 정악단 정기공연에서 연주됐다.

악기는 1776년(정조 즉위)에 설치한 경모궁악기조성청(景慕宮樂器造成廳)에서 만들었으며 아악기, 당악기, 향악기가 혼합으로 편성된다.

편종(編鐘) 2틀, 편경(編磬) 2틀, 방향(方響) 2틀, 진고(晉鼓) 1부, 절고(節鼓) 1부, 장고(杖鼓) 2부, 어(?) 2부, 당비파(唐琵琶) 1부, 향비파(鄕琵琶) 1부, 현금(玄琴) 1부, 가야금 1부, 아쟁(牙箏) 1부, 생(笙) 2부, 훈(壎) 2부, 태평소 1부, 해금 1부, 피리 2개, 대금(大琴) 2좌, 당적(唐笛) 2개, 퉁소 1개, 지(?) 1개, 독(纛) 2부, 노도(路 ) 1부, 휘(麾) 1부, 조촉(照燭) 1부, 대금(大金) 1좌, 박(拍) 2부 등 모두 27종이다.

정조는 제사를 지낼 때 음악을 제대로 연주하지 않은 것은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고 하여 제례를 올릴 때마다 매번 음악과 관련된 내용을 많이 지적했다고 한다.

집권 초반에 규장각을 설치하면서 아악기(중국의 아악을 연주할 때 쓰는 악기) 종·경·금·슬을 규장각에 하사한 것도 악(樂)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이며 특종, 편종을 규장각 학사들에게 익히도록 지시한 것 또한 악학을 꾸준히 연구하기 위함이었다.

음악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닦는 것’이라고 생각한 정조는 악(樂)을 통해 덕(德)을 갖추고자 함이었다.

아아, 드러내지는 않으셨지만,

아름답고 부드럽게 덕을 쌓으셨도다!

저의 정성도 이미 받으셨으니

거듭 큰복을 내려 주십시오

(경모궁제례악 악장 中)

세손시절부터 악학(樂學)에 대한 연구가 깊었던 정조는 음악이론에 밝았다.

김선희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단원)

궁중의례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제대로 연주하고 있는지, 연주 실력은 어떤지, 연주할 때 조화를 잘 이루는지, 연주자 수는 부족하지 않은지 등의 여부를 살폈고 악학(樂學)에 조예가 깊은 덕분에 이 시대에는 관찬악서(官撰樂書)가 많이 출간됐다.

집권 초기부터 규장각 제조 서명응(악서편찬 주도적인 역할)에 의해 악학(樂學) 진흥을 위한 악서간행이 이루어졌는데 ‘시악화성’, ‘국조시악’, ‘시악묘계’, ‘악통’등이 있다. 이는 조선후기 음악이론 연구에 중요한 문헌이다.

정조는 세종과 더불어 조선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임금으로 꼽힌다.

소설과 그림 판소리 등 각종 문화를 번성시켜 조선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인물로 평가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