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효석문학 100리길 1구간 (문학의 길)

메밀꽃이 소금을 뿌린 듯 흐뭇한 달빛에 숨 막히다

2019년 09월 24일(화) 18:05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줄기와 흰 물결 출렁이는 메밀꽃이 잔잔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푸른 하늘과 산봉우리, 산에 기댄 마을을 배경으로 한 메밀밭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예쁘다.
아내는 봉평의 메밀꽃 하얗게 피어있는 길을 걷고 싶어 했다. 몇 년 전부터 봉평에 가자고 노래를 불렀는데, 가는 길이 워낙 멀어 엄두를 못 내다가 후배 부부와 함께 1박2일 코스로 봉평을 찾았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효석문화마을에 도착하니 곳곳에 메밀밭이 산재해 있고, 이효석문학관과 효석달빛언덕도 조성돼 있다. 마을입구에서 해바라기꽃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맞이한다.

해바라기꽃밭 옆에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가 사랑을 나누던 물레방앗간이 재현돼 있다. 이효석이 1936년 발표한 ‘메밀꽃 필 무렵’은 1920년대 어느 여름 낮부터 밤까지, 강원도 봉평에서 대화장터로 가는 길을 배경으로 한다. 장돌뱅이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떠돌이 삶이 그의 추억 이야기 속에서 시간과 공간의 이동과 함께 절묘하게 펼쳐진다. 소설의 주된 배경인 메밀꽃 핀 달밤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며 아름답게 묘사된다.

물레방앗간에서 도로를 건너니 메밀밭이 드넓게 펼쳐진다. 넓은 메밀밭 가운데로 난 구불구불한 꽃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는 금방 메밀꽃에 취해버린다. 이효석은 하얗게 핀 메밀꽃을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다고 묘사했다. 무릎 높이의 메밀꽃밭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꽃 바다에 둥실둥실 떠가는 것 같다.
효석문화마을에 재현해 놓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가 사랑을 나누던 물레방앗간.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줄기와 흰 물결 출렁이는 메밀꽃이 잔잔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푸른 하늘과 산봉우리, 산에 기댄 마을을 배경으로 한 메밀밭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예쁘다. 소설 속 주인공 허생원이 물레방앗간에서 하룻밤 사랑을 나눴던 성서방네 처녀를 그리워하며 걸었을 메밀밭을 생각하니 메밀꽃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관광용으로 조성된 메밀밭을 뒤에 두고 흥정천변을 따라 걷는다. 개울물에 빠진 허생원을 동이가 업고 건너며 혈육의 정을 느끼던 그 흥정천이다. 지금은 하천변에 축대가 쌓여, 옛날처럼 자연스러운 풍경은 아니지만 흥정천을 흐르는 물은 여전히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하천변의 작은 마을 평촌리를 지나자 숲길이 이어진다. 숲길을 들어서자마자 팔석정이라 불리는 절경을 만난다. 팔석정은 8개의 바위를 가리켜 붙여진 이름으로, 양사언이 강릉부사로 재임할 때 이곳의 자연경치에 탄복해 정사도 잊은 채 8일 동안 신선처럼 노닐며 즐겼다는 곳이다. 이후 양사언은 이곳에 팔석정이라는 정자를 세우게 하고 1년에 세 번씩 찾아와 시를 짓곤 했다.

팔석정 너럭바위로 내려서니 양사언이 충분히 반할만한 경치가 펼쳐진다. 잘 반죽된 흙으로 아름답게 빚어놓은 것 같은 바위들이 우뚝우뚝 서 있거나 비스듬히 누워서 절경을 이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7-8m 높이로 솟은 바위에는 몇 그루의 소나무가 고고하게 서서 아름다운 동양화 한 폭을 이루고 있다. 바위는 깊지 않은 소(沼)와 어울리고 물 위에는 또 하나의 그림을 그려놓았다. 소를 지난 물줄기는 너럭바위 아래로 물보라를 만들어내며 흘러간다. 너럭바위 틈새에서는 쑥부쟁이가 청초하게 꽃을 피워 쓸쓸한 가을정서를 대변해준다.
팔석정은 8개의 바위를 가리켜 붙여진 이름으로, 양사언이 강릉부사로 재임할 때 이곳의 자연경치에 탄복해 정사도 잊은 채 8일 동안 신선처럼 노닐며 즐겼다는 곳이다.

하천변 산허리 숲을 따라가는 길이 고즈넉하다. 푸근하고 청량하다.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이 봉평장에서 대화장까지 80리 밤길을 걷던 그 길이다. 홀아비 허생원이 20여년 전 정을 나누고 헤어진 처녀를 잊지 못해 이곳을 찾고, 마침내 밤길에 동행한 젊은 동이를 친자로 확인하는 애틋한 사연이 이 길 위에 펼쳐진다.

걷기 좋은 숲길이 계속되는가 싶더니 금산교라는 다리 근처에서 백옥포리 마을로 통하는 시멘트길로 접어든다.

흥정천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산줄기가 나란히 이어지고, 산자락에는 넓지 않은 농경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백옥포리로 가는 산비탈 언덕에 소나무 한 그루가 군계일학처럼 서 있다.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 주변을 호령하고 있는 듯하다.

백옥포리에 들어서자 대부분의 밭이 메밀밭이다. 효석문화마을의 메밀밭이 관광용이라면 이곳의 메밀밭은 마을주민이 직접지은 농사다. 효석문화마을에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였지만, 이곳 메밀밭에는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는 사람조차 찾아볼 수 없다.

메밀꽃은 한해살이 농작물이다. 메밀은 봄에 심어 여름에 수확하는 여름메밀과 여름에 심어 가을에 수확하는 가을메밀로 나뉜다. 주로 재배되는 품종은 가을메밀이다. 여름메밀은 5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에 파종하고, 가을메밀은 7월 중 파종한다. 지금 꽃을 피운 메밀은 가을메밀이다. 메밀로는 국수, 냉면, 묵, 만두, 전병, 싹나물비빔밥, 나물무침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든다. 봉평에는 메밀로 만든 전문음식점들이 많다.
효석달빛언덕에 복원해 놓은 이효석의 생가.

메밀은 잎과 꽃, 줄기가 연해서 바람에 쉽게 흔들린다.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리는 메밀꽃밭은 파도가 일 때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 같다. 좁은 골짜기와 띄엄띄엄 산자락에 자리 잡은 민가를 배경으로 핀 메밀꽃은 봉평의 초가을 풍경을 대표한다.

메밀밭을 지나 하천 옆 수로를 따라 걷는다. 수로를 걷는 우리에게 산비탈 숲이 그늘을 제공해준다. 흥정천의 물소리를 음악 삼아 걸으니 기분이 상쾌하다. 수로를 돌아 산자락을 한 굽이 돌아가자 다시 메밀밭이 펼쳐진다. 곳곳이 메밀밭 천지다.

마을길을 따라 걷다가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가는 길과 만난다. 흥정천 건너로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고, 효석문학 100길은 백옥포교를 건넌다.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지나면 물길은 속사천이다. 속사천 너머로 용평면 장평리가 자리하고 있다. 속사천변 여울목 쉼터에서 1구간이 끝나고, 2구간은 대화면소재지까지 이어진다.


※여행 쪽지

‘효석문학 100리길’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속의 인물 허생원과 동이의 여정을 쫓아 걷는 길로, 평창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를 맛볼 수 있다. 총거리 53.5㎞, 5개 구간으로 나눠져 있다.
▶‘문학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효석문학 100리길 1구간’은 이효석의 문학적 발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코스로,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지인 효석문화마을과 허생원이 대화장을 가기 위해 걷던 길을 따라 가는 길이다.
▶코스 : 봉평 평창군관광안내센터→메밀밭→흥정천교→평촌2교→금산교→백옥포마을→흥정천 수로길→백옥포교→노루목고개→용평 여울목(쉼터)
▶거리/소요시간 : 7.8㎞ / 2시간 30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봉평 평창군관광안내센터(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이효석길 157)
▶출발지인 효석문학마을과 도착지 근처 장평마을에는 식당이 많다. 그중에서도 이효석문학관 입구에 있는 원미식당(033-335-0592)은 메밀전문음식점으로 메밀국수, 메밀전병 등 메밀로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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