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가 된다는 것 주홍 |
| 2019년 10월 03일(목) 17: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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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은 바이오 우주선이었다. 단세포로 자궁에 착상해서 둘, 넷, 여덟, 열여섯… 분열의 분열을 거듭하며 심장이 되고 척추가 되고 폐가 되고 팔이 되고 다리가 되고, 눈, 코, 입, 귀, 뇌가 되도록 바이오 우주선은 태아에게 영양분을 공급했고, 40억년의 진화가 가능하도록 조건을 만들어주었다. 2주에 한 번씩 초음파로 우주선에서 진화하고 있는 지구의 여행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여행자는 자궁에서 10개월이 아니라 40억년의 진화를 하면서 지구의 인간이 되고 있었다.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뱃속 아이에게 “당신을 환영한다.”라는 메시지를 허밍으로 노래하듯 들려주었다. 눈을 감고 내가 좋아하는 바흐의 춤곡을 허밍으로 들려주며 내게 찾아온 위대한 영혼의 손님과 대화했다. 내 시간으로 정확하게 10개월이 지났고, 자궁에서 진화의 시간으로 40년이 지나 지구에 아이의 모습으로 태어났다. “3.3㎏ 정상입니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고 있는 아이는 내가 상상했던 그 모습이었다.
그렇게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보니, 뱃속에 있었을 때 보다 더 힘든 일상이 내게 찾아왔다. 임신 중에는 둘이 아니라 하나였는데, 이젠 둘이 된 것이다.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둘! 내가 보살피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존재가 내 곁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었다. 휴식이 없었다. 인간으로 지구에 도착할 수 있도록 생존과 진화가 가능한 자궁이라는 환경을 내가 제공했듯이 태어난 후에도 스스로 먹고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엄마는 아이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다. 울면 젖을 물렸고 똥오줌을 치워주고 목욕을 시켜서 안고 자장가를 부르며 잠들기를 반복했다.
울고 웃기만 하던 아이가 어느 날 “엄마!”하고 처음으로 말을 했을 때, 그 소리는 처음으로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전 우주가 진동하는 공명이었다. 진짜 엄마가 되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서 말하듯이 내 딸이 엄마라고 불러주니 나는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는 내 딸이 되었다. 나에게 딸과 아들이 그렇게 왔고, 그 위대한 인간의 성장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가족으로 살게 되었다. 그것은 곧 나의 성장과도 같았다. 엄마가 되고 보니 고민이 생겼다. 어떻게 이 험한 세상에서 잘 살아가도록 가르칠까? 게다가 가난한 예술가 부부가 아이를 낳았으니 막막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경쟁 사회에서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지구는 또 어떤가? 핵과 전쟁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고 생존을 위해서는 환경을 파괴하는 포식자가 되어야만 하는 이 생존이라는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행지가 아닌가? 그런데 나를 찾아온 영혼에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진화를 포함하면 지구를 여행하는 한 생애는 정말 짧은 여정이다. 딸과 아들이 엄마와 함께 생활하는 시간은 더 짧다. 길면 20년 정도 같은 집에서 독립을 준비하며 가족으로 살다가 독립해서 떠날 것이다. 엄마가 되었으니 한 집에서 가족으로 생활하는 동안 딸과 아들과 행복한 기억을 공유할 수 있도록 시공간을 창조하기로 했다.
그래서 같이 그림 그리고 같이 노래하고 같이 춤추고 산책한다. 부엌에서 같이 요리하고 같이 청소하며 화분에 물을 주고 분리수거를 하는 이 일상이 도깨비 드라마의 대사처럼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우리가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엄마라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