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 만드는 마을 이계양 |
| 2019년 10월 06일(일) 17:54 |
|
여기서 마을이라는 단어에 주목한다. 마을은 사전에 ‘(도시가 아닌 고장에서) 여러 집이 이웃하여 살아가는 동네. 촌락(村落), 촌리(村里)’라고 풀이 되어 있다. 또 한자의 자원(字源)에 따르면 리(里)는 ‘사람이 일구어 만든 농토(田) 사이의 땅(土)에 옹기종기 집이 들어선 <마을>’을, 촌(村)은 ‘나무(木) 숲속에 묻혀 질서정연한(寸)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는 <마을>’을 뜻한다. 즉 마을은 ‘사람들이 경작할 땅과 살 집들을 마련하여 옹기종기 모인 집단(공동체)’을 일컫는 말이다. 또 마을들이 모이면 향(鄕)이 된다. 향(鄕)은 ‘인접한 마을(촌락)의 사람들이 마주 앉아 고소한 밥(皀)을 여럿이 앉아서 먹는 <시골>’을 뜻하기 때문이다.
요즘의 마을은 주로 행정구역체계 속의 단위로 여기지만 전통적으로는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공동체의 개념이 더 강하였다. 그러기에 국가 단위의 행정엔 경국대전(經國大典) 같은 법률이 제정되어 작동하지만 마을엔 공동체의 유지와 존속을 위해 스스로 향약(鄕約)과 촌계(村契)같은 규약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게 된 것이다. 국가나 행정기관이 개입된 법과 제도 이전에 주민 스스로의 필요에 의한 마을 자치 규약을 만들고 그에 따라 질서 있게 생활을 도모한 것이다. 로크가 자연권을 내세운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인다.
향약(鄕約)은 덕업상권(德業相勸·좋은 것은 서로 권한다), 과실상규(過失相規·잘못은 서로 규제한다), 예속상교(禮俗相交·예의로 서로 사귄다), 환난상휼(患難相恤·어려운 일은 서로 돕는다)을 도덕과 윤리의 4대 덕목으로 삼아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고 미풍양속을 지키고 상부상조를 도모하는 향촌규약 - 향약(鄕村規約 - 鄕約)이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향약(鄕約)과 달리 백성들 사이에서는 두레, 황두와 같은 촌계(村契)가 있었다. 촌계(村契)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이루어진 규칙이기에 기록으로도 남아있지 않고 다만 민속으로 전할 뿐이다. 마을의 축제였던 마을 제사나 공동 노동을 통해 마을의 안녕과 평안, 풍요와 무병장수 등 일상생활을 서로에게 기대고 도우며 사는데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규약이었다.
말하자면 마을의 형식적 형성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마을의 운영도 향약(鄕約)이나 촌계(村契)처럼 당연한 필요에 의해 스스로 만든 규약에 따르고 있는 것은 지금의 <마을 만들기>사업에 좋은 시사가 된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재임 5년 동안 50조원을 투입하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화 도시화된 시대라서 ‘도시재생’이라 하였지만 실제로는 ‘마을 재생’에 다름 아니다. 삶의 질 향상, 도시 활력 회복, 일자리 창출, 공동체 회복 및 사회통합을 목표로 매년 10조씩 5년 동안 투자하겠다는 정책이다. 이를 위해 3대 추진전략(도시공간 혁신, 도시재생경제 활성화, 주민과 지역주도)과 5대 추진과제(노후 저층 주거지의 주거환경 정비, 구도심을 혁심거점으로 조성, 도시재생 경제조직 활성화 ← 민간 참여 유도, 풀뿌리 도시재생 거버넌스 구축, 상가 내몰림 현상에 선제적 대응)를 마련하여 정부지원 종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지역 공동체가 주도하여 도시재생을 추진하는 기반을 마련하겠단다.
아무리 살펴봐도 주민이 스스로 참여하여 마을을 만들고,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공동체를 이루도록 하겠다는 말은 없다. 결국 돈을 쏟아 부어서 집 짓고, 도로 정비하고, 상가를 조성하여 살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말로 이해된다. ‘관(정부)이 마을을 만들어 줄 테니 주민들은 관(官)이 하자는 대로 따라오기 바란다’로 읽혀서 부자연스럽고 불편하다. 돈으로, 법과 제도와 물리력으로 마을이 공동체가 될 수 있겠는가. 물론 돈이 필요한 것도, 집을 짓거나 고치는 것도, 먹고 살 터전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된다. 그리고 관의 역할과 개입, 지원 등이 꼭 필요함도 인정한다. 하지만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이 있다. 관 중심에서 주민 중심의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마을은 주민 스스로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주체요 중심이 될 때 공동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은 주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