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파괴’하는 부끄러운 자화상 이윤배 |
| 2019년 10월 28일(월) 1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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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언어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글을 현존하는 언어들 가운데 가장 과학적이고 정보 사회에서 가장 유용한 문자로 인정하면서 한글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리고 일본의 노마 히데키는 그의 저서 ‘한글의 탄생’에서 “한글의 탄생은 동아시아 문화의 역사 속에서 일대 사건이었다”라고 쓰고 있다.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외국인들마저도 한글의 우수성을 이처럼 찬양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우리말인 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애써 외면한 채 한글을 홀대하고 천시하고 있다.
그런데 한글 사용을 올바르게 선도하고 이를 실천해야 할 ‘방송사 등 언론기관’들이 앞장서 외래어나 외국어를 오·남용하고, 비속어까지 남발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뉴스 룸, 비하인드 뉴스, 위클리 업 앤드 다운, 비긴 어게인 시즌, 휴먼 다큐, 그리고 무비 월드 스페셜 등등 셀 수조차 없이 많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의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각종 매체마다 정체불명의 은어, 비속어가 홍수를 이루고 국적 불명의 표현까지 난무해 한글 훼손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거리의 간판들 역시 미국인지, 유럽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뜻도 알 수 없는 외래어와 외국어로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국어기본법 제4조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어 발전과 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기관과 지자체들의 상징이나 구호, 정책 이름, 공문 등에 로마자 표기가 남용되고 영어와 한글을 뒤섞은 국적 불명의 조어들 마구잡이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국회입법조사처(NARS)’, ‘자동출입국심사(SES)’, ‘국제군인스포츠위원회(CIMS’)라고 써야 함에도 그냥 ‘NARS, SES, CIMS’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LH(한국토지주택공사), Koboco(한국방송광고공사), KORAIL(한국철도공사),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처럼 기관명에 영문 약어를 사용한 것은 이미 관행처럼 돼 있다.
물론 물밀듯 밀려오는 새로운 문물과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새로운 명칭이나 용어를 다 한글로 사용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또 한정적인 토박이말로 새로운 이름을 짓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적 불명의 외국어, 통신 언어의 무분별한 남용이 우리 글, 우리말을 알게 모르게 훼손하고 오염시키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10대 누리꾼들이 사용하는 통신 언어는 한글 훼손을 넘어 한글 파괴로 이어져 기성세대와 세대 간 단절감마저 느끼게 하고 있다.
초기 통신 언어는 사용상 제약성과 의사소통을 신속하게 하려고 음운을 줄이거나 받침을 없애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단계라고 할 수 있는 외계어는 기성세대를 배제한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청소년들의 또 다른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통신 언어와 일반 언어를 구별하는 성인과 달리 이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여과 없이 외계어를 사용하고 있어 우리말을 왜곡하고, 언어를 배워 가는 청소년들에게 그릇된 언어관을 심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정부와 교육 당국은 올바른 통신 언어 사용 프로그램 개발 및 보급과 함께 국어 문법 교육을 강화하는 등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한글을 파괴하는 것은 한글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일뿐만 아니라 바로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한글이 외래어와 외국어로 뒤범벅이 돼 우리의 정신과 문화가 더는 오염되지 않도록 학교·언론·국민 모두 한글문화와 한글에 대한 의식을 개혁하고 한글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다. 외래어나 국적 불명의 외국어를 남발하는 자체가 바로 사대주의 근성이자, 주체성 상실의 시발점이라는 사실을 정부, 언론기관은 물론 국민 모두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