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 걱정하지 마라 소묘란 수필

2020년 01월 27일(월) 17:22

‘걱정하지 마라 모든 것은 지나간다. 걱정하지 마라.’는 경주에 계시는 큰스님께서 경자년(庚子年) 새해 아침에 주신 메시지다.

살아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걱정은 늘어나고 끊이지 않는다. 자식걱정, 건강걱정, 무수히 얽힌 인연들 걱정에 몸과 마음이 힘들고 숨이 차다. 그것이 어디 나만의 일일까 만은 삶의 무게가 힘겨워 고민하며 밤을 곧추세우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고민한다고 하여 또 걱정한다하여 해결되는 일도 아니거늘 시도 때도 없이 심신을 혹사시킨다. 내가 만든 틀에 내가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덕이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갖은 욕심에 현혹되어 그 주머니 채우려고 고민 아닌 고민을 하는 것인지 반성도 하게 된다. 걱정은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란 생각이 짙어진다. 비우고 산다면 가벼워질 텐데 하는 마음에 지난날을 돌아본다.

빈농(貧農)의 6남매 장남인 남편의 월급봉투에는 매달린 식구들이 많았다. 얄팍한 월급봉투로 견뎌내자니 우리는 신혼 초 월세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해야만 했다. 면소재지에 있는 시골집 단칸방 10달 방세를 한꺼번에 지불하였는데 그 금액이 삼천 원이었다. 나뭇단을 사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하던 시절이었고 쌀은 한 됫박씩 사곤 하였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냇물에 빨래방망이로 얼음을 깨고 새빨갛게 꽁꽁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빨래를 했었다. 그때도 고무장갑은 있었지만 고무장갑을 사서 쓸 여유는 없었다. 박카스병에 담긴 참기름 한 병은 1년을 먹었다. 그것은 시어머니가 주신 것인데 단지 식용기름의 의미만은 아니었다. 보약보다 더 귀한 시어머니의 정신과 같았기에….

아득히 먼 이야기가 아니다. 샌드위치 세대라 일컫는 우리들이 살아온 지난날이고 불과 40년 전 일이다. 같은 마을에 살던 동료교사 가족이 광주로 이사를 가면서 50만 원짜리 전세를 얻었다는 소식은 한동안 우리의 가슴을 수런거리게 할 만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사를 가던 날, 배웅하러 나갔더니 이삿짐을 싣던 선생님께서 “사모님이 우리 나이가 되면 더 잘 살 수 있을 테니 힘내요.” 하셨다. 그때는 그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꿈같은 말이라 희망조차 갖지 못했다. 5일마다 서는 장날에 장을 보러 다닌 적도 없었고 학교 관사 텃밭에 갖가지 채소를 정성껏 가꾸며 생활을 하였다. 대부분이 가난했고 너나없이 절약은 필수였던 시절이었다. 가난했지만 열심히 살았고 살기에 급급하여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려본 적도 없다. 50만원은커녕 단돈 만원도 없던 때였으니까.

고달팠지만 그 시절을 성실하게 살아냈음으로 오늘날 우리 삶은 그보다는 윤택해졌다. 작지만 내 소유의 집도 생겼고 무엇보다 냇가까지 빨랫감을 이고 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호시절을 살고 있다. 그 귀하던 고무장갑 정도는 필요하다면 수백 켤레 정도는 살 수 있고, 참기름 역시 참깨를 사다 넉넉하게 기름을 짜서 먹을 정도의 경제력은 되었다. 그때에 비하면 모든 것이 풍족해졌는데 왜 마음은 넉넉지 않은 것일까. 물질적인 것은 분명 풍족해졌는데 늘 허전하고 헛헛하다.

분명 상대적 빈곤 때문일 것이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추위에 떨어야할 만큼 의복이 남루하지도 않다. 그러나 마음은 빈곤하고 속은 더욱 허허롭다. 내 몫이 아닌 것에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금전적인 것에 목말라 있었다면 지금은 건강 때문에 마음을 끓인다. 세월이 흐르니 또 다른 고민이 새롭게 생겼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터인데 내 영역 밖의 일에 욕심을 두니 마음이 시시때때로 괴롭힘을 당한다. 어떤 것인들 온전한 내 것이 어디 있으며 있다고 한들 끝까지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재산도, 건강도, 자식들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 부질없는 욕심 때문에 삶이 더욱 고달파진다. 거스르지 않고 순리대로 살면 족한 것을, 진애(塵埃)덩이 하나 잡고 애면글면 한다.

‘즐거움과 괴로움에 움직이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큰스님의 메시지가 뇌성(雷聲)처럼 들린다. 마음을 가다듬는다. 큰 가르침에 두 손 모으며 마음 또한 비운다.


소묘란 약력
▶‘시와 의식’ 등단 (1991년)
▶광산문학상, 대한문학상 수상
▶남도수필문학회 회장 역임
▶(현)한국문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이사 및 수필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