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와 진보 이야기 김일태 |
| 2020년 01월 28일(화) 18:40 |
|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비례대표 의석 중 30석에 연동형 비례대표제(연동률 50%)가 헌정 사상 최초로 도입되었다. 가보지 않는 길이라 반대쪽은 위성 정당을 창당해 연동형에 맞서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보수는 혁신과 통합의 기치로 정권 심판을 여권은 세대교체를 위한 인재영입과 서민 공약으로 야당 심판을 또 한축은 제3의 길을 말하면서도 지역의 바람을 들먹이고 있다.
이런 정국에서 유권자들은 여야의 기존 정당들을 선호하기보다는 기존 정당에 실망하거나 무관심하여 무당파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일부 유권자들이 보수나 진보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아니라 위선의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들의 행동과 운동에 심한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유권자들도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정치나 정책들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으며 지역, 세대,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참된 보수나 진정한 진보를 표방한다면 정당을 선택하여 투표하게 된다.
이제 보수와 진보의 철학과 행동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근대 보수주의는 당시 유럽 전역에 퍼진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헤쳐 나오려는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진정한 현대의 보수주의 철학과 운동은 러셀 커크(Russell Kirk)의 ‘보수의 정신(The Conservative Mind)’(1953)으로 이어졌고 4년 후 ‘Concise Guide to Conservatism’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 한국어판)에서 철학적으로 정리되었다. 러셀 커크는 단적으로 ‘보수주의는 이념의 부정’이라고 정의하고 미국에서 보수적 이념을 지탱하는 10가지의 주요 원칙으로 인간과 국가(도덕), 다양성과 평등, 정의, 재산과 자유, 권력, 시간(과거), 근대 사회의 공동체, 미국 보수주의자의 공정한 정부, 정치 제도(공화국), 변화와 개혁에서 참된 보수주의의 태도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그는 “보수주의의 원칙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희망을 지켜주고 보수주의가 평등한 정의, 개인적 자유, 인류의 사랑스러운 과거 모습들을 갈망하는 중요한 사회적 개념”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보수의 철학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보수주의자들은 대다수의 국민들에 의해 장기간 동안에 형성되고 통용된 사회적 계약이나 합의를 지속하고 발전시키기보다 공공정책, 사회보장제도, 고용시장, 사법제도 등에서 민영화하거나 인권과 복지를 축소시키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참된 보수주의 운동이 특정한 현안, 지역, 인물에 대한 구호보다 보수의 철학을 실천하는 정책에 충실하면 유권자들에게 기존 정당의 영역을 넘는 폭넓은 선택의 여지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진보의 철학과 행동, 그리고 실천에 대해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미래를 말하다(The Conscience of a Liberal」(2007)의 ‘진보주의자의 양심’의 장에서 ‘진보주의’는 철학이고 ‘진보주의운동’은 행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존재할 수 있어 “진보주의자들은 불평등과 불공정을 막는 제도를 믿는 사람들이고 진보주의 운동가들은 직간접적으로 이런 제도를 보호하거나 확대하려는 정치적 집단(당파성)에 참여하여 실천하는 사람들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은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미국을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시대인 도금시대(1870년대부터 뉴딜정책이 등장한 1930년대까지)로 후퇴시키려고 한다”고 비난하고 “진보주의는 극심한 빈부격차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고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유, 그리고 법치를 추구하고 복지를 실현한다”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 진보주의는 남북한 대립의 딜레마로 주변국과의 외교적 마찰과 이념적 갈등이 존재하겠지만 사회보장과 의료, 사회안전망, 이민자 수용, 토지와 주택문제 등 공공정책에서 불공정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중산층 사회를 실현하는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모든 정당들은 모든 유권자들에게 맹목적이고 대결적인 이념과 지역, 그리고 특정 현안을 강요하기보다는 모든 국민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수나 진보의 가치를 실천하고자 하는 정책의 영역을 명확하게 보여줌으로써 공정한 경쟁을 통한 유권자의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