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생도 아는 ‘런던 콜레라’ 확산 방지책 이정록 |
| 2020년 03월 10일(화) 17: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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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이 애독하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제공하는 학습 자료엔 이런 게 있다. 제목은 ‘런던 전염병 지도 제작’이다. 학습 대상은 10-14세(초등 4학년-중등 2학년)고, 관련 교과목은 생물(건강)과 지리다. 학습 자료는 지도 2장이 전부다. 1854년 당시 런던 소호 지구에 있던 급수 펌프(water pump) 분포 지도와 콜레라 사망자 분포 지도다. 학습 활동은 4단계다.
1단계는 문제 해결에 지도가 유용한가에 대한 내용이다. 지도에 그려 넣을 수 있는 정보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도록 한다. 이후 교사는 허리케인 위험에 처한 지역에서 어떤 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한지, 독감에 걸린 사람들이 많은 도시를 여행할 때 독감 분포 지도를 보고 무엇을 알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그리고 독감처럼 질병 발생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종종 질병 확산을 막는 방법을 결정하기 위해 지도를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2단계는 학생들에게 ‘콜레라 사망자 분포 지도’를 나눠주고 지도를 분석한 후 토론한다. 지도에서 각 점(點)은 무엇을 의미(사망자 분포를 의미)하는지, 어느 구역에 주로 집중되어 있는지 질문한다. 그리고 전체 학생들과 함께 사망자 분포 지도는 어떤 도움이 되는지, 콜레라는 어떻게 퍼졌는지, 지도를 만든 존 스노우(John Snow) 박사에게 도움이 될 정보는 없는지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3단계는 학생들에게 ‘급수 펌프 분포 지도’를 나눠주고 토론한다. 학생들이 급수 펌프 위치를 확인하고, 콜레라 사망자 지도와 급수 펌프 지도를 겹쳐 놓게 한 후 다음 질문을 던진다. 급수 펌프 위치와 사망자 분포 관계, ‘브로드 가’에 위치한 펌프 주변에서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이유, 스노우 박사가 두 지도를 통합해 지도를 하나로 만든 목적, 일명 ‘살인 펌프’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한 이유 등이다.
4단계는 스노우 박사가 사용한 문제 해결 과정에 대한 토론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콜레라 확산을 막기 위한 스노우 박사 활동에 대해 묻고 토론하는 것으로 학습 활동은 끝난다. 하지만 이 자료를 활용한 심화(深化) 학습에선 지도를 이용한 실제 거리 측정, 유사한 전염병 확산을 표시한 또 다른 지도 찾기보기, 현대 의학 발전에 공헌한 스노우 박사 업적을 인터넷이나 도서관에서 찾아보기 등으로 확장된다. 심화 학습에서는 ‘스노우 박사는 연구 종료후 보건 당국에 어떤 편지를 보냈을까요?’라는 교사 질문도 있다.
1854년 8월 영국 런던 소호 지역엔 콜레라가 창궐했다. 특히 저소득층이 많이 살던 소호 지역의 브로드 가에선 주민 열 명 중 한명이 콜레라에 걸렸다. 발병 10일 만에 500명이 죽었다. 마취과 의사였던 스노우 박사는 콜레라 확산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브로드 가 일대를 직접 답사해 자료를 모아 사망자 분포 지도를 만들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브로드 가에 위치한 펌프 주변에선 사망자가 많았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줄어드는 동심원(同心圓) 분포 패턴을 보였다. ‘급수 펌프가 콜레라 확산의 발병원’일 거라는 스노우 박사 평소 지론(持論)과 일치한 결과였다.
스노우 박사는 1854년 9월 7일 열린 세인트제임스 교구 이사회에서 자신의 조사 결과를 설명한다. 콜레라 발병원은 워터 펌프라는 사실을 지도로 설명하고 펌프 폐쇄를 주장한다. 당시 의료계에선 콜레라가 나쁜 공기에 의해 감염된다는 이른바 독기설(毒氣說)이 대세(大勢)였다. 때문에 스노우 박사도 인정하고 일반인들에게도 소개된 ‘콜레라는 물에 의해 감염된다’는 이른바 ‘수인성(水因性)설’을 주류 의료계는 부인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노우 박사는 본인이 조사한 결과와 ‘수인성설’에 동의하는 일부 의사들 견해를 근거로 이사회 멤버를 설득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사회는 스노우 박사 논리를 수용하고, 다음날 브로드 가 급수 펌프 손잡이를 제거하는 조치를 취한다. 이후 브로드 가에선 콜레라가 사라졌다.
요크 출신 촌뜨기 의사가 만든 전염병 지도는 지리적 거리와 분포의 관계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제공하는 학습 자료처럼 말이다. 특히 전염병 확산을 설명하는 감염학과 메디컬지리학에선 바이블과 같은 대접을 받는 지도다. 166년 전 스노우 박사가 만든 ‘런던 전염병 지도’가 던지는 교훈과 시사점은 딱 한가지다. ‘전염병 확산을 억제하려면 발병원과 감염원을 빨리 없애라’는 거다. 브로드 가 급수 펌프 손잡이 제거처럼 말이다.
작금의 ‘코로나 사태’는 머지않아 종식될 거다. 하지만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초동(初動) 대처에 대한 논란과 후과(後果)는 만만치 않을 테다. 초동 대처의 핵심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스노우 박사가 제안한 급수 펌프 폐쇄처럼 발병원과 감염원을 조기(早期)에 없애고 차단하는 거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제공하는 학습 자료를 공부한 초등학생도 안다. 전염병 확산을 막으려면 급선무(急先務)가 무엇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