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은 왔지만 이종환 |
| 2020년 03월 15일(일) 1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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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숙의 봄은 새로운 얼굴들과 함께 온다. 고단해진 몸과 마음을 뒤로 하고 저마다 각기 다른 꿈을 안고 온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레임을, 가족과 헤어지는 허전함을 낯선 환경에 대한 긴장감을 안고 온다. 겨울을 이겨내고 온다. 그들이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따뜻한 봄이 올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슴속에는 생명을 담고 온다. 그것이 있기에 꽁꽁 얼어붙은 땅거죽 아래서도 씨앗들이 어깨를 펴고 두꺼운 얼음장 아래로 개울물이 흐른다. 학숙의 봄은 그렇게 온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과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온 세계를 긴장 속에 몰아넣고 있는 감염증이 겨울을 묶어두고 있으니 학숙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수업이 시작되면 학숙에서 지내게 될 학생은 물론이거니와 보호자께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학숙에서도 코로나19에 대비하고 있다. 방역소독을 실시하고 열감지 카메라와 체온계, 손 소독제를 준비해 두었다. 식당에서도 가급적 혼자서 밥을 먹도록 할 계획이다. 가상의 상황을 설정해서 상황별로 처리할 일과 움직여야 할 동선에 대해 익숙해지도록 연습하고 있고 개인별로 소독제를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휴대용기도 준비했다. 한사람의 부주의가 입사생 전체의 학업을 그르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 지나침이 있을지라도 부족해서는 안 된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면 걱정이 덜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새삼스럽게 ‘우리는 언제까지 아들딸들을 서울로 보내야 할까’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인구가 하락세를 보이는 지역 입장에서 우수한 인재들의 서울 집중은 광주·전남의 지속가능한 발전과도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인재 유출은 어쩔 수 없지만 상위층의 대량 유출이 고착화 된다거나 장기적으로 유턴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은 해소되어야 한다. 수도권 집중을 줄이고 젊은이들이 돌아오는 지역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를 생각해봤다.
무엇보다도 교육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언제부터 서울과의 거리가 일류 이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됐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산학연관 등 교육, 채용, 정책의 주체들이 열려있는 마음으로 적극적인 논의를 해 나가야 할 시점이 됐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공공기관 이전은 성사됐다. 우리는 그 취지를 최대한 살려 지역인재의 육성과 지역발전을 이끌어내야 한다. 서울에 필요한 인재, 대기업이 원하는 인재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 필요하고 보탬이 되는 인력을 양성한다는 취지를 살려간다면 좋겠다.
두 번째로 좋은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는 것도 인공지능 산업을 키우려는 것도 문화로 밥을 먹고 살자는 것도 결국 만족할 만한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우리 아들딸들이 고향에서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게 만들고, 더 많은 지식과 더 많은 경험을 안고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산업단지나 각종 산업지원기관들이 특화된 모습을 가졌으면 한다. 보편적인 지원기능에 머무르지 말고 특화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차별화된 역량을 기초로 관련분야 발전을 선도해 나가는 기관이 됐으면 좋겠다.
세 번째는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관심이다. 우리는 우리를 키워준 과거에 대해 소홀하고 고마워하는데도 서툴다. 낡은 작업복, 기름때 묻은 손, 주름진 얼굴을 가까이하기 주저한다. 새로운 것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진 것에 대한 진솔한 평가도 중요하다. 새로움 역시 과거의 축적에서 출발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가진 것에서 가능성을 찾아내고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때 비로소 그 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또 다른 인재를 보게 될 것이다. 시선을 내부로 돌려 주변을 살피는 사려 깊은 심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아이들에게 다른 생각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한다. 왜 꿈이 없느냐, 왜 의지가 없느냐고 한다. 그런데 이제 우리에게 질문해보자.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고. 남도엔 봄이 왔겠다. 앞으로는 ‘오는 봄만 맞으러 말고 내손으로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