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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광주형 일자리를 흔드는가

박기홍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2020년 04월 22일(수) 19:25

6년여 전 광주에서 초유의 실험이 시도됐을 때 많은 사람들은 뜨악해 했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경영자에게는 임금부담을 줄여주고 대신 일자리를 늘려 젊은이들에겐 일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 생경한 시도에 경제계, 노동계, 정부, 정치권, 전문가 모두가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혹평했다.

동종업계 평균임금이 얼마인데 연봉 3천만-4천만원의 일자리가 가능하겠냐. 노사 주도가 아니고 지자체가 나서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지속성은 있겠는가 등등이 의구심의 배경이었다. 실체가 없는 정책을 광주형 일자리로 포장해 혹세무민한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광주는 “어차피 새로운 실험에는 실체가 없다. 단지 실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창조이고 혁신이다”며 비난을 일축하고 묵묵히 실체를 만들어 갔다. 그 저변에는 빈약한 제조업으로 청년들을 자체적으로 흡수할 일자리가 없고, 이로 인해 탈 광주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결국에는 광주공동체의 지속 가능성마저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리고 지난한 작업은 시작됐다. 노동계와의 부단한 접촉과 토론, 설득의 과정이 계속됐다. 낮은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사회적 임금’의 개념도 도입했다. 노동자들에게 주거와 보육, 문화 등의 혜택을 부여함으써 실질 임금을 높이자는 방안이었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2019년 1월30일 마침내 광주시 노사민정협의회는 노사상생발전협정서를 의결했고, 다음날인 1월31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광주시와 현대자동차 간에 역사적인 ‘완성차투자협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광주형 일자리에 의구심을 보냈던 많은 전문가들조차 광주의 뚝심과 성과에 환호했다. 언론들은 광주의 실험을 집중 조명했고, 한국 제조업을 되살리는 유일한 방법으로 광주형 일자리를 칭송했다. 지자체들은 광주형 일자리를 벤치마킹한 지역상생형 일자리를 앞다퉈 추진했다.

이후 ㈜광주글로벌모터스(이하 GGM)를 설립하고 23년 만에 국내 자동차공장 건설에 착수해 순조롭게 건설이 진행되면서 내년 9월 완성차 양산이라는 당초 계획은 무난하게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1천명의 인력 직접 채용도 단계별로 추진되고 있다.

이처럼 순항 중이던 광주형 일자리가 사업의 한 축인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가 노사상생의 취지가 퇴색됐다며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급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무엇보다도 사업의 취지에 공감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투자를 했던 주주들의 동요가 심상치 않다. GGM 주주들은 최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노동계의 상생발전협약서 파기 선언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 4월29일까지 노사상생발전협정서 이행 및 정상화가 되지 않으면 사업진행 여부 등의 조치를 주주총회를 소집해 결정키로 의결했다. 주주들이 이탈하면 그 순간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좌초된다. 그만큼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에는 사업 시행의 주체이고 GGM의 사실상의 최대 주주인 광주시의 책임이 크다. 혹여 노동계와의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인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계가 책임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이 사업의 핵심 주체 가운데 하나로 사업 성공에 대한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광주시와 시민사회단체, 21대 국회의원 광주지역 당선인들이 노동계를 접촉하며 참여를 호소하고 있지만 요지부동이다. 안타깝고 지극히 유감이다.

그 누구도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흔들어서는 안된다. 23년만의 국내 완성차 공장 건립이란 의미가 실로 중하고, 청년 1천여명의 직접고용과 1만여명의 간접고용이 갖는 의미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광주형 일자리와 인공지능산업을 양대 축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광주의 꿈 또한 절실하다. 지금까지 달려온 과정, 그 과정에서 쏟아온 각 주체들의 땀과 열정, 시민들의 열망과 기대 또한 가벼이 여겨선 안된다.

광주가 이 사업을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시대와 역사에 큰 죄를 짓게 된다. 앞서 열거한 것처럼 한국 제조업의 부흥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청년 일자리를 외면하고, 광주의 미래를 저버리는 등 헤아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하여 어떻게든 광주형 일자리의 좌초는 막아야 한다. 아무도 가보지 않는 길을 가면서 이견과 갈등은 늘상 만나야 하는 과정이다. 이견이 있다면 노사민정의 틀 안에서 치열하게 토론해 결론을 찾으면 될 일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리를 박차고 떠난다면 이는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각 주체들은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인식의 협량함에서 벗어나 한발씩 양보하기 바란다. 광주시와 GGM은 노동계와의 소통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노동계 또한 즉각 노사민정협의회에 복귀해 대화에 나서길 바란다. 오히려 광주형 일자리를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 성공시킨다면 훗날 역사와 사회는 노동계의 결단을 높게 평가할 것이다. 노동계의 대승적 결단을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