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하늘은 눈보라 속인데 어떻게 얻어 왔을까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373)

2020년 06월 23일(화) 19:10

盆梅(분매)
창계 임영

백옥당 매화나무 한 그루 심어졌고
예쁜 꽃 가득 피어 술잔을 들게한데
하늘의 눈보라 속에 어찌 얻어 왔을까.
白玉堂中樹 開花近客杯
백옥당중수 개화근객배
滿天風雪裏 何處得夫來
만천풍설리 하처득부래


매화는 주로 뜰에 심어 고결한 향을 으뜸으로 여겼다. 봄을 맨 먼저 알린다고 했으니 선비들의 즐겨 애송했던 시문을 수없이 만난다. 발을 동동 구르면서 눈을 밟고 외롭게 피어 있어 더욱 사랑스러웠다. 뜰에 핀 매화에 욕심을 다 채우지 못해 화분에 심어 방안에 두는 선비들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한다. ‘백옥당에는 매화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심어져 있는데, 예쁜 꽃 바라보니 갓 피어나 술잔을 들게 한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온 하늘은 눈보라 속인데 어떻게 얻어 왔을까’(盆梅)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창계(滄溪) 임영(林泳·1649-1696)으로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학자다. 이단상·박세채의 문인으로 알려진다. 뒤에 송시열·송준길에게도 수학했으며, 이기설에 있어서 이이의 ‘이기일원론’에는 찬성하고 ‘기발이승설’에는 극구 반대했던 인물이다. 저서로는 ‘창계집’이 전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백옥당 매화나무 한 그루 외롭게 심어져 있는데 / 예쁜 꽃 바라보니 갓 피어나 술잔을 들게 하네 // 온 하늘은 아직도 눈보라 속에 잠겨 자욱하기만 한데 / 어느 곳에서 이 모든 것 얻어 왔을까]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분재한 매화를 보면서]로 번역된다. 매화는 자연으로 두었을 때 제 이름값을 한다. 포근하게 적시는 이슬도 받아먹고, 촉촉하게 내린 비를 받아 다른 나무뿌리들끼리 땅 속에서 만나면 정다운 대화도 하고 먹을 것도 나누면서 오순도순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화분에 심어 놓으면 답답했을 것이며 이런 정담어린 대화를 나누지 못했을 것은 뻔해 보인다.


시인은 이런 점에 착안해 매화를 품에 안고 시상을 일으켰을 것이다. 백옥당 앞에 매화나무 한 그루가 피어있는데, 예쁜 꽃이 애잔하게 피어 있어 술잔을 들게 한다 했다. 흥분된 마음에 자꾸만 술잔을 들게 했다는 시상이다. 매화는 봄의 전령으로 새로운 한 해가 돌아왔다고 알리는 반가운 소식 때문이기도 했겠다.

화자는 아직은 추위가 가시지 않아 눈보라 속인데도 봄을 안고 오는 매화의 고마움에 취해 있음을 살피게 한다. 그래서 ‘온 하늘은 아직도 차가운 눈보라 속인데도 어느 곳에서 어떻게 온지도 모르게 이 모든 자연의 선물을 얻어서 왔을까’라는 시적인 노래를 부른다. 시 중엔 매화라는 말은 한 자도 없으나 이것이 매화를 두고 노래함을 금방 알 수 있다.

※한자와 어구

白玉堂: 선비들이 거처하는 곳, 中樹: 외롭게 심어져 있다. 開花: 매화가 피다. 近客杯: 가깝게 있는(사는) 친구와 술 한잔을 나누다. 滿天: 하늘 가득하다. 風雪裏: 바람과 빗속에, 바람과 비가 내리다. 何處: 어느 곳. 得: 얻다. 찾아 오다는 뜻. 夫: 여기선 매화를 지칭하는 지시대명사. 來: 매화가 얻어오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