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을 만들고 손을 들며 흩어져 돌아가니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378)

2020년 07월 28일(화) 17:53

世上事如浮雲(세상사여부운)
기은 박문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니
인간 세상 모든 일이 뜬 구름 같은데
무덤에 손을 놓으니 달빛에 쓸쓸하네.
空手來空手去 世上事如浮雲
공수래공수거 세상사여부운
成墳墓客散去 山寂寞月黃昏
성분묘객산거 산적막월황혼


아마 시인은 무척이나 바빴던 모양이다. 시를 짓던 날 암행어사 마패를 차고 어디론가 백성을 괴롭히는 고을의 원을 찾아가는 길을 바쁘게 서둘렀던 것 같다. 육언(六言)이야 의도적으로 했을 터지만 깜박 시제를 붙이지 못하고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태백산 준령을 넘으면서 세상사 뜬 구름과 같은 연신 읊조렸을 것이다.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세상(世上=世相)사 모든 일이 뜬 구름만 같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무덤을 만들고 손을 들며 흩어져 돌아가니’(世上事如浮雲)로 제목을 붙여 본 육언고시풍이다.

작가는 기은(耆隱) 박문수(朴文秀·1691-1756)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탕평의 실을 강조했다. 특히 군정과 세정에 밝아 당시 국정의 개혁 논의에 중요한 몫을 다했다. 저서로는 ‘탁지정례’, ‘국혼정례’가 있고, 글씨로는 ‘오명항토적송공비’가 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사람은 빈손으로,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 세상(世上=世相)사 모든 일이 뜬 구름만 같구나 // 무덤을 만들고 손님으로 흩어져 돌아가니 / 산은 적막하고 쓸쓸한데 달빛만 어슴푸레하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세상 일이 뜬 구름만 같구나]로 번역된다. 인생이란 공수래공수거란 말이 있다. 곧 빈손으로 세상에 왔다가 빈손으로 세상을 떠난다는 뜻이겠다.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뜬 구름과 같다는 말들도 많이 한다. 흔히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지만 사람이 한 생을 산다는 것은 뜬 구름 같다는 불가(佛家)의 이야기를 새겨들을 일이다.


시인은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시적인 인생사라는 그림을 그렸던 모양이다.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세상의 일이 마치 뜬 구름과 같다는 시상을 한 줌 사발에 곱게 담아내고 있다. 젊었을 적의 노년은 아슴아슴하게만 보이더니, 늙어서 걸어왔던 지나간 행적은 어찌 그리도 허무하고 쉽게만 와버렸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화자는 이런 인간의 허무를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은 미래지향적인 한 폭 그림을 그려 엮듯이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제는 한 봉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손님돼 제각기 흩어져 돌아간 것이니, 산은 적막하기만 하고 쓸쓸한데 달빛만이 어슴푸레하다는 시상이다. 아무래도 사람의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한자와 어구

空手來: 빈손으로 오다. 空手去: 빈손으로 가다. 世上事: 세상의 일. 如浮雲: 뜬 구름과 같은 것. 곧 ‘허무하다’는 뜻임. // 成墳墓: 무덤을 만들다. 客散去: 손님이 돼 흩어져 돌아가다. 山寂寞: 산은 적막하고 고요하다. 月黃昏: 달은 황혼에 물든다. 여기에서도 허무를 뜻함.

/시조시인·문학평론가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