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소설가의 세상읽기]능력주의와 자기계발 멘탈도 스펙인 시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2020년 08월 13일(목) 17:55

바야흐로 자기계발의 시대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려는 이, 경력이 단절됐다가 다시 직장을 찾는 이 모두에게 자기계발은 필수가 됐다. 외국어학원이나 스피치학원은 자기계발의 고전적인 축에 속하고, 사업기획서 쓰는 법, 파워포인트 작성법, 참신한 아이디어 생산법을 가르쳐준다는 학원들도 성업 중인 모양이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려는 사람만이 아니다. 아이를 양육하거나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이들 또한 이 흐름을 피해갈 수 없다. 아이를 더 잘 키우기 위해, 살림을 더 효율적으로 꾸려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 수많은 이들이 오늘도 ‘조금 더 나은’ 자신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자기계발 광풍은 일상의 전 영역에서 능력주의가 관철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물론 능력주의는 초경쟁사회가 사회구성원을 부추기는 방식이다. 연령과 성별, 직업, 지역, 교육수준, 경제적 능력 등과 상관없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학생도, 직장인도, 주부도, 학부모도 옆사람보다 더 능력 있어야 하며, 자신의 능력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뭐든 배우고 익히고 노력해야 한다.


자기계발의 사전적 의미는, ‘잠재하는 자기의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 줌’이다. 자기 안에 존재하지만 꺼내 보일 기회가 없었던 슬기와 재능, 사상을 일깨운다는 건 무척 아름답고 귀한 일일 테다. 그런데 자기계발의 열풍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슬기와 재능을 일깨워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며 살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자기계발에 몰입했다가 지금은 자연인처럼 살아가는 내 지인의 표현을 빌자면, “자기계발이라는 개미지옥”에서 허덕이기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혐의가 드는 것이다. 나의 지인은 꽤 오랫동안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를 써왔다.

직장인으로서 필요한 사무능력을 키우기 위해 컴퓨터 오피스 프로그램을 독학했고, 영어를 익히기 위해 서구권 사람들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어 사전을 뒤적여가며 채팅을 했으며 ‘체력도 능력’이라며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도 했다. ‘교양도 능력’이라며 출퇴근하는 차 속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오디오북으로 듣는다는 말에 이르러서는, 정말이지 ‘참으로 열심히 살구나’라고 그를 아는 모두가 탄성을 질렀다.

그로부터 얼마 후 모임에서 그는 돌연 모든 ‘자기계발’을 그만뒀다고 고백했다. 할수록 해야할 게 많아지고, 계발할수록 계발할 숙제가 더 많아지는 게 마치 개미지옥 같았다고도 했다. 먹을수록 허기지는 아귀 같은 생활을 그만두고 나니,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고 삶의 활기가 돌았다는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무망함이 삶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철학적 논변까지 펼치고 있었다.


어쩌면 나의 지인은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가지가 많고 잎만 무성해 나무꾼의 ‘쓸모’에 들지 않았던 나무가 오히려 베어지지 않고 천수를 누리는 것을 보며 장자는 말했다.

“누구의 쓸모인가? 사람들은 쓸모있는 것이 되고자 애를 쓰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는구나.”


식당을 나와 카페로 향하는 길에 한 가게의 유리면에 붙여진 포스터에서 이런 문구를 봤다. ‘멘탈도 스펙이다.’

체력이 능력이고 외모도 스펙이고, 이제 멘탈도 스펙인 시대다. 인간의 모든 특성을 상품화하는 게 자본주의의 속성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상품화할 수 없는 인간적인 면모는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던 게 얼마나 순진한 발상이었는지. 자본의 의도에 맞게 멘탈까지 단련해야만 살아남는 이 초경쟁사회에서, 우리가 쌓으려고 노력하는 스펙, 우리가 키우려고 노력하는 능력이라는 게 어떤 삶을 지향하고 있는지 묻는 것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용한 질문일는지.


그래도 그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는 것을 그만두는 순간, 우리는 개미지옥에서 쓸모있는 인간이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휘장처럼 두른 채, 스스로를 닦달하고 괴롭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장자의 말처럼 ‘쓸모없는 나무의 쓸모’는 사회가 강제하는 쓸모와는 다른, 내 삶의 의미와 본질을 스스로 규정하는 주체적인 나만의 쓸모일 것이다. 필연적으로 그것은 나라는 인간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나의 욕망과 지향, 내가 꿈꾸는 삶과 일상, 그것이 온전히 나의 내면으로부터 비롯된 것인가에 대해 처절히 탐색하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그 어려운 걸 어떻게 하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개미지옥 운운하던 지인이 대답했다. “유튜브 검색해봐.”

유튜브에 그런 것도 있냐는 말은 시대에 뒤떨어진 우문이었다. 지인은 요즘 자기계발의 화두는 영성이며, 시크릿과 마인드풀니스, 명상, 알아차림 기법을 가르쳐주는 채널이 많다고 전해줬다. 그리고는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잠재의식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원하는 것을 이루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채널을 소개해줬다.

정미경 <광주여성가족재단 근무 소라넷 다큐소설 ‘하용가’ 저자>

지인은 그 유튜버가 언급한 책은 즉시 베스트셀러가 돼서 출판사들이 엄청난 광고비를 내고 있으며, 유튜버 자신의 책까지 내면서 새로운 셀럽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말도 곁들었다. 마이클 샌델의 책을 읽는다고 말할 때처럼 달아오른 지인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묘한 기분이었다. 그래, 그렇구나. 그런 것도 다 가르쳐주는 유튜버들이 있구나. 장자가 말한 쓸모없음의 쓸모도 결국 우리가 다 아는 그 쓸모로 귀결되는구나.


내 지인은 자기계발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 주제를 옮겨갔을 뿐이었고, 그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무망함이란 결국 ‘더 나은 자신’이 되는 하나의 단계일 뿐이었다. 쓸모를 자신만의 고유함으로 재정의하는 일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싶은 내 눈에 포스터만 큼직했다. ‘멘탈도 스펙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