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 속 사람 모두 원수이니 친한 사람 누군가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383) |
| 2020년 09월 01일(화) 1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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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강 김지섭
좁쌀 같이 넓은 바다 한 분만 빛을 내고
배 속엔 모두 원수 친한 사람 누가 있나
세상은 촉도보다 험해 진국 보다 무섭구나.
萬里飄然一粟身 舟中皆敵有誰親
만리표연일속신 주중개적유수친
崎嶇世路難於蜀 忿憤興精甚矣秦
기구세로난어촉 분분흥정심의진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 격으로 흔들리고 있을 때, 분연하게 몸을 바쳐 구한 의사와 열사들이 있었다. 이름을 널리 날렸던 장군이나 의사들이 있었는가 하면 이름도 없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지는 이들이 있어 가슴을 섬뜩하게도 했다. 우리 민족 대부분은 그렇게 의분을 삭히지 못해 자기 목숨을 쉽게 생각했던 것이다. 기구한 세상 분분한 물정 촉도보다 험하고, 성내고 흥하고 정미로움은 진나라보다 더 무섭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배 속 사람 모두 원수이니 친한 사람 누군가(決平生志1)로 제목을 붙여본 율의 전구인 칠언율시다. 작가는 추강(秋岡) 김지섭(金祉燮:1884-1928)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다. 경북도 안동 출생으로 상주보통학교 교원을 거쳐 금산지방법원 서기, 김응섭 법률사무소 상주출장소원을 지냈던 것으로 알려진다. 1919년 3·1운동 때 독립운동에 가담해 활약하다 1920년 중국으로 망명, 의열단에 가입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넓은 바다 좁쌀 같은 이 한 몸인데 / 배 속 사람 모두 원수이니 친한 사람 누군가 // 기구한 세상 분분 물정 촉도보다 험하고 / 성내고 흥하고 정미로움 진나라보다 무섭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평생 동안 결정한 뜻인데(1)]로 번역된다. 나라 바람 앞의 등불이었을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선현들의 눈물어린 이야기를 많아 만난다. 우리 민족은 나라를 잃었을 때 구국의 일념으로 모두 그랬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투철한 신념에 불탔던 것이다.
시인도 구국의 대열에 들어가 민족독립운동가로 활약했던 것을 생각하면 시상의 흐름을 다소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넓은 바다에 좁쌀 같은 이 한 몸인데, 배 속 사람들 모두 원수이니 친한 사람 누가 있는가라는 시상을 이끌어냈다. ‘넓은 바다’랄지 ‘배 속 사람’ 용어의 비유법은 모두 일본과 관련된 용어이겠다.
화자는 자기의 결연한 의지를 빼곡하게 담아냈다. 기구한 세상에서 분분한 물정은 촉나라 보다 험하고, 성내고 흥하여서 그 정미로움은 진나라 보다 무섭구나! 라고 했다. 촉나라와 진나라의 흥망성쇠를 가다듬고 있었으리. 후구에서는 [오늘날 종적을 감춰 바다에 뜬 이 나그네 / 그 아니 와신상담했던 사람 아니던가 // 오늘의 이 행차가 평생 뜻한 바의 갈 길을 정했으니 / 고향을 향하는 길 다시는 더 묻지 않으리라]라는 시적 이미지를 담았다.
※한자와 어구
萬里: 먼 길. 곧 많다는 뜻. 飄然: 떠있다. 一粟身: 한 좁쌀의 몸. 舟中: 배 안에. 皆敵: 다 적이다. 有誰親: 친한 사람이 누구인가. // 崎嶇: 기구하다. 기구한 운명으로 쓰임. 世路: 세상. 難於蜀: 촉도보다 험하다. 忿憤: 성내다. 興: 흥하다. 精甚矣秦: 정미로움이 진나라보다 더 무섭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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