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행차 평생 뜻한 바의 갈 길을 정했으니 (384)

2020년 09월 08일(화) 18:30

決平生志[2](결평생지)
추강 김지섭

오늘날 종적 감춰 바다에 뜬 나그네
반드시 누워있어 상담했던 사람이네
오늘에 고향 향한 길 더는 묻지 않으리.
今日潛踪浮海客 昔年嘗騰薪臥人
금일잠종부해객 석년상등신와인
此行已決平生志 不向關門更問秦
차행이결평생지 불향관문갱문진

1923년 일본 동경에 관동대지진이 일자 수많은 한국인이 일본군에게 학살당했다. 이에 의열단은 결사 단원을 일본에 파견해 요인을 암살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웠고, 김지섭 의사가 실행 대원으로 선임됐다. 김지섭 의사는 일본 궁성으로 들어가는 이중교(二重橋)를 뛰어 건너가며 위병들을 향해 2개의 폭탄을 더 던졌으나 불발됐다. ‘오늘날 종적을 감춰 바다에 뜬 이 나그네, 그 아니 와신상담했던 사람이 아니던가’를 묻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오늘 이 행차 평생 뜻한 바의 갈 길을 정했으니’(決平生志 2)로 제목을 붙여 본 율(律)의 후구인 칠언율시다.

작가는 추강(秋岡) 김지섭(金祉燮·1884-1928)으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다. 상하이·베이징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제국의회에 참석하는 일본고관들을 저격하려 했으나 제국의회 무기한 연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일본 궁성의 니주바시에 폭탄 3개를 던졌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독립운동가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오늘날 종적 감춰 바다에 뜬 나그네 / 그 아니 와신상담했던 사람 아니던가 // 오늘 이 행차는 평생 뜻한 바의 갈 길 정했으니 / 고향 향한 길 다시 더 묻지 않으리]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평생 동안 결정한 뜻인데(2)]로 번역된다. 시인은 하늘을 찌를 듯한 격정을 나타낸다. 그리고 결연한 자기 의지를 보인다. 전구에서는 [넓은 바다에 좁쌀 같은 이 한 몸인데 / 배 속 사람들 모두 원수이니 친한 사람 누가 있나 // 기구한 세상 분분한 물정 촉도보다 험하고 / 성내고 흥하고 정미로움은 진나라 보다 무섭구나]라고 했다.

간담이 서늘한 시인의 결연한 의지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비장함을 느끼게 한다. 오늘날 종적을 감춰 바다에 뜬 이 나그네 / 그 아니 와신상담했던 사람 아니었느냐는 생각을 갖게 된다. 대추 모양의 폭탄 세 개를 외투 속에 숨기고 일본행 화물선에 올랐던 것을 상기하면 선뜻 이해가 된다.

화자는 이중교 의거에서 폭탄을 투척에 자기 몸을 희생하려는 면면이 시상 속에 배어나온다. 오늘 나의 일본행 행차는 평생 뜻한 바의 갈 길을 정했던 것이니, 내 의연히 고향 향하는 길 다시는 더 묻지 않겠다고 했다. 폭탄 투척의 거사는 일본 왕을 처단 대상으로 삼은 첫 번째 투쟁이자 식민지 해방 투쟁사에서 빛나는 의열 투쟁이었음을 생각할 때 높은 의열의 기상이 엿보인다.

※한자와 어구

今日: 금일. 오늘날. 潛踪: 종적을 감추다. 浮海客: 바다에 뜬 나그네. 昔年: 嘗騰薪臥: 와신상담(뜻 땔나무 위에 눕고, 쓸개를 맛보다. 원수를 갚기 위해 분발함). 人: 사람. // 此行: 오늘 행차. 已決: 이미 결정하다. 平生志: 평생의 뜻이다. 不向: 향하지 않다. 關門: 고향을 뜻함. 更問秦: 다시는 묻지 않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