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신세계갤러리, 내달 6일까지 이매리 작가 초대전 ‘시 배달’(Poetry Delivery) 인류 역사·문명의 기록으로 존재의 실마리를 찾다 발굴조사로 사라진 강진 고향 터 계기로 ‘지층의 시간’·‘캔토스의 공간’ 등 시리즈 회화·설치·영상 등 신작 포함 30여점 전시 정겨울 기자

2020년 09월 23일(수) 18:31

이매리 作 ‘지층의 시간’

광주를 기반으로 세계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이매리 작가는 수년간 ‘하이힐’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자신을 알려 왔다. ‘하이힐’이라는 소재가 가진 의미를 통해 여성으로서의 자아와 실재, 존재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 왔다. 이제 작가는 역사문명의 흔적으로 눈을 돌렸다. 인류의 역사, 문명의 기록을 통해 존재의 실마리를 찾겠다는 뜻에서다.

광주신세계갤러리는 다음달 6일까지 이매리 작가의 초대전을 연다.

작가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현장을 직접 찾아 사진으로 남기고, 그 위에 경전(經典)이나 시(時)의 내용을 금분으로 한 줄, 한 줄 써내려 간다. 그 과정을 통해 잊혀진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작품에 담아 우리로 하여금 그 앞에 발길을 잠시 멈추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지층처럼 쌓여진 삶의 역사를 한 층, 한 층 파헤치며 탐색하는 이매리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레 잊혀졌던 과거의 흔적을 지상 위로 끌어 올린다. 지층이란 오랜 세월에 걸쳐 자갈, 모래 등의 여러 종류의 흙이 일정한 곳에 층을 이뤄 쌓이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다양한 인류, 즉 우리 삶의 역사도 어디엔가 차곡차곡 쌓여 그 흔적의 장소를 만든다. 그것은 어느 특정 장소에 잊혀진 채 남겨져 있거나 어떠한 문자로 기록되기도 하고, 오랜 세월 구전(口傳)으로 전해져 우리의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있기도 하다.

작가의 고향인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는 1천년 전 창건된 월남사가 소실된 자리에 형성됐던 마을이 사찰터 발굴조사라는 명목 하에 다시 사라진 곳이다. 이 월남사지에는 그 땅에서 삶을 영위하던 과거와 현재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존하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시간과 공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지층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작가의 작품에 시의 형식으로 지난한 과정을 통해 쓰여져 미래의 누군가에게 전달된다.

이매리 作 ‘시배달’

이매리 作 ‘시를 배달하는 자’

‘시 배달’(Poetry Delivery)을 주제로 하는 이 전시에서는 작가의 최근 시리즈 연작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에서 작가는 2015년부터 시작해 온 ‘시를 배달하는 자’, ‘지층의 시간’, ‘캔토스의 공간’ 등 시리즈를 선보인다. 작가만의 다양한 방식으로 꾸준히 기록해 온 회화·설치·영상 등 30여점을 만나볼 수 있다.

‘시 배달’ 연작의 영상작품에서는 다른 문화와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그 민족의 시를 낭송한다. 비록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이지만 각국의 시 안에 스며있는 삶과 숨결이 또 다른 시공간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에게 전달돼 각 나라의 민족과 한 국가의 생성과 소멸, 인류의 미래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한편, 이매리 작가는 1963년 강진 출생으로 목포대 미술학과와 조선대 대학원 미술학 석·박사를 졸업했다. 개인전 35회와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2015),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2018)에 참여하며 주목받았다.

/정겨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