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도 ‘행정통합’ 논의와 일본 오사카의 교훈 이정록 |
| 2020년 10월 06일(화) 1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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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1일 일본 오사카시(市)에선 주민투표가 실시된다. 오사카시와 오사카부(府)를 통합하는 이른바 ‘오사카도구상(大阪都構想)’에 대한 찬반 투표다. 만약 가결되면 2025년 1월1일 통합된 행정구역 ‘오사카도(都)’가 만들어진다. 도쿄도(都)에 버금가는 메가시티(Mega-City) 출현이다.
11월 치러질 주민투표는 5년 전에 이어 두 번째다. 첫 번째 투표는 2015년 5월17일 실시됐지만 찬성 49.6% 반대 50.4%로 부결됐다. 그런데 5년 전 좌초됐던 ‘오사카도구상’이 오사카유신회(大阪維新の會) 소속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예인돼 찬반 투표를 앞두고 있다. 결과와 상관없이 오사카 지방에서 축적된 정치적 리더십의 승리다.
‘오사카도구상’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간사이(關西)경제연합회는 1963년 이후 ‘부현(府縣)합병’을 꾸준히 주장한다. 간사이경제연합회의 지속적인 활동과 2000년대 등장한 지방분권·광역행정 분위기에 힘입어 오사카부 주변 7개 현은 2010년 간사이광역연합(關西廣域聯合)을 만든다. 2008년 오사카부지사로 취임한 하시모토 도루(橋下徹)는 2010년 4월 자민당을 탈당한 오사카부·시 의회 의원 30여명과 함께 지역정당 성격의 오사카유신회를 결성한다.
오사카유신회 간판공약이 바로 ‘오사카도구상’이다. ‘잃어버린 20년’ 이후 오사카의 경제적 위상이 하락 추세라고 판단한 오사카 정치 지도자들은 지역회생 카드로 ‘하나의 오사카(One Osaka)’를 슬로건으로 ‘오사카도구상’을 주창한다. 오사카부(882만명)와 오사카시(275만명)를 합쳐 오사카도를 만들자는 거다. 약 1천157만명 도시가 되면 도쿄도(1천400만명)와 경쟁이 가능해 일본 ‘제2수도’ 역할을 할 수 있고, 중복행정의 비효율 제거와 광역행정 일원화로 오사카 성장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나의 오사카’ 논의를 본격 주도한 지도자가 당시 오사카부지사였던 하시모토 도루다. 그는 임기 만료 3개월을 앞두고 지사직을 전격 사임한다. ‘오사카도구상’을 실현시킬 목적으로 오사카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다. ‘하나의 오사카’란 슬로건을 내건 그는 2011년 11월 오사카시장에 당선된다. 2014년 3월 재선에 성공하자 자신과 오사카유신회 간판공약이었던 ‘오사카도구상’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부치지만 2015년 5월 부결된다. ‘오사카 변화(Change Osaka! 5.17)’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찬성을 독려했던 젊은 시장 하시모토 도루는 부결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정계를 떠난다.
하지만 ‘오사카도구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15년 11월 오사카부지사와 오사카시장 선거에서 ‘오사카도구상’을 공통 공약으로 내건 오사카유신회 소속 마쓰이 이치로(松井一郞)와 요시무라 히로후미(吉村洋文)가 각각 당선된다. 마쓰이 지사는 하시모토 도루와 함께 오사카유신회 출범부터 지도부로 활약한 멤버다. 2018년 11월 ‘2025오사카간사이EXPO’ 개최가 확정되면서 오사카유신회가 추동하는 ‘오사카도구상’은 탄력을 받는다. 이에 고무된 마쓰이 지사와 요시무라 시장은 2019년 4월 지방선거에서 선거구를 교차해 출마한다. ‘하나의 오사카’를 공통 공약으로 내걸고, 마쓰이 지사는 시장 후보로 요시무라 시장은 지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다. ‘하나의 오사카’에 대한 유권자의 정치적 지지를 받은 것이다.
오사카유신회가 2019년 지방선거에서 오사카부·시 집행부와 의회를 장악하면서 ‘하나의 오사카’는 다시 날개를 편다. 그 결과 오는 11월 ‘오사카도구상’에 대한 찬반 투표가 성사됐다. 물론 통합에 대한 일본 내 정치인과 전문가들 의견은 찬반으로 나뉜다. 최근 아사이신문 여론조사 결과(9월29일자)를 보면, 찬성(42%)이 반대(37%)보다 많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오사카 경제·사회적 위기를 직감한 탁견(卓見)을 가진 정치 지도자가 연대와 협력, 솔선과 양보의 리더십을 발휘해 좌초된 ‘오사카도구상’을 부활시켰다는 점이다.
우리 지역에서도 논의답지 않은 시·도 통합 논의가 두 번 있었다. 이번이 세 번째다. 그런데 왜 우리 지역은 오사카와 달리 지역 경쟁력 제고 차원의 시·도 통합 논의를 정치적 의제로 지속시키지 못했을까? 탁견을 가진 지도자가 없어서?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지역 정치의 천박한 구조 때문? 미래 비전과 합리적 시각을 견지한 전문가 집단과 시민사회단체의 부재(不在)? 아니면 ‘정치적 식견’이 높은 지역민답게 통합 논의도 ‘정치적’으로 해석한 결과? 아마 이 모든 것이 복합된 결과일 테다.
이용섭 광주시장의 뜬금없는 ‘행정통합’ 제안에 지역사회가 술렁인다. 하지만 정치적 셈법은 어떻고, 감투 몇 개가 없어지며, 광주와 전남 어디에 유리하고 불리한지 등은 중요치 않다. 시·도민이 집단지성으로 풀어볼만한 화급(火急)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논의를 통해 시·도민 생각을 물어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20-30년 후 광주·전남 모습이 그려진다면 말이다. 일본 오사카에서 벌어지는 통합 논의는 그래서 타산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