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4 섬’ 신안군 ‘1도 1뮤지엄’ 가보니… 24개 미술관·박물관 건립 아트프로젝트 ‘천사대교’로 육지와 연결…사업에 탄력 섬마다 미술관·박물관…문화 옷 입은 ‘예술 섬’으로 가자 신안=정겨울 기자

2020년 10월 19일(월) 18:44

신안군이 ‘1도 1뮤지엄’, ‘플로피아 신안’ 등 자연환경과 문화예술이 어우러진 사업을 진행하며 관광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진 위부터 자은도 양산해변 전경, 기점·소악도의 12사도길 중 8번 ‘마태오의 집’, 안좌도 본섬과 반월·박지도를 잇는 퍼플교.

망망대해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고립된 공간, 뱃길이 아니면 육지에 닿을 수 없는 곳…. ‘섬’을 떠올리면 뇌리에 스치는 이미지들이다. 이제 이런 섬의 이미지를 모두 잊어도 좋다. 대한민국 서남단에 위치한 신안은 더 이상 고립된 섬이 아니다. 지난해 4월 개통된 천사대교를 통해 자동차로도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됐기 때문.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접근성이 낮아 많은 이들이 드나들 수 없었던 신안의 섬들이 문화예술이라는 새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나고 있다. 민선 7기 신안군의 브랜드 시책 사업인 ‘1도 1뮤지엄 아트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를 접목한 프로젝트로, 신안군 13개 섬에 24개(박물관 12개, 미술관 11개, 복합문화관광타운 1개)의 뮤지엄을 건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근 다녀온 신안군의 주요 명소들과 ‘1도 1뮤지엄’의 주요 거점들을 소개한다.

# 기점·소악도 ‘12사도 순례길’
광주에서 차로 1시간30분을 달려 압해도에 도착했다. 곳곳에서 김과 새우 양식을 하고, 넓게 염전이 펼쳐지는 등 마침내 섬에 왔음을 실감했다. 압해 신장선착장에서 배로 갈아타고 증도면 병풍리에 위치한 기점·소악도로 향했다.

기점·소악도는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 등 노두길로 연결된 5개의 작은 섬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썰물 땐 하나의 섬이 되고 하루 두 번 밀물 때엔 노두길이 물에 잠겨 각각 독립된 섬이 된다.

기점도와 소악도는 ‘가고싶은 섬’ 사업에 선정된 이후 ‘순례자의 섬’으로 거듭난 곳이다. 작은 마을이지만,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이미 이름 나 있다. 작은 섬에 자리했다고 해 ‘섬티아고’란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꼬불꼬불하고 좁은 길 12㎞를 걸으며 예수의 12사도를 기리는 공간들이 있어서다. 모든 곳을 걸어서 도달하려면 왕복 약 6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마을길 따라 난 길에 있는 언덕이나 갯벌, 호수 등에 자리잡은 12개의 작은 예배당이 바로 ‘12사도 예배당’이다. ‘12사도 순례길’은 국내 작가 6명, 프랑스, 스페인 출신 해외 작가 4명 등 예술인 10명이 참여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생명평화의 집-요한’, ‘생각하는 집-안드레아’, ‘지혜의 집-가롯유다’ 등 예술인들은 각 사도의 이름을 따 두 평 남짓한 크기의 예배당을 세웠다.

섬 곳곳에 마치 동화처럼 자리잡은 이 예배당의 특징이라면, 특정 종교에 구애받지 않았다는 것. 기독교나 천주교인에게는 예배당이고, 불교 신자에게는 작은 암자로서의 기능을 한다. 무교인 사람들에겐 이곳이 명상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종교인, 비종교인 상관 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들렀다 가는 공공 건축미술 작품인 것이다.


# 자은도 ‘뮤지엄파크’ ‘무한의 다리’
기점·소악도에서 나와 다시 배를 타고 압해도로 이동해, 이곳에서 차로 30분을 달려 자은도에 도착했다. 자은도가 내어 준 첫 풍경은 바로 ‘양산해변’. 가을의 파란 하늘과 해변의 파도소리, 고운 모래. 여기에 바람 따라 움직이는 인근의 해상풍력발전기가 어울려 마치 그림과도 같은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해 준다.

자은도는 전국의 섬들 중 열두 번째로 큰 규모이지만, 교통이 불편해 예전엔 사람들의 손길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아 오래도록 천혜의 자연을 보존한만큼 수십, 수백년간 떠밀려 온 해양쓰레기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신안군은 본격적으로 이곳을 ‘1004 뮤지엄파크’란 이름의 복합문화예술단지로 탈바꿈하기에 나섰다. 자은도 양산해변 일대 50만㎡ 부지에 박물관과 공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양산해변은 오랜 쓰레기 정화작업을 통해 환골탈태 했으며, 신안군은 일대의 난개발을 막기 위해 인근 부지를 모두 매입하기도 했다. 신안자연휴양림, 1004섬 수석미술관, 세계조개박물관은 이미 완공돼 손님맞이를 한 상태다.

먼저 들른 곳은 1004섬 수석미술관. 2천100평 규모의 미술관은 실내 전시장과 야외 수석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수석정원에는 2천700t의 수석들과 200여종의 야생화, 100여종의 분재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땅에서 볼록 올라온 작은 언덕 위 수석과 꽃들이 하늘과 구름과 어울려, 판타지와 같은 경험을 하게 한다.

이어 실내 전시장에는 신안군 소장 작품과 외부 기증작 등 260여점 수석 작품들이 한데 놓여 있다. 특히 이곳에선 일부 작품에 AR 기술을 접목해, 박물관 안에서 ‘산신령’이 나오는 장면과 각 작품 위에서 노니는 동물들을 태블릿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1004섬 수석미술관과 인접해 있는 ‘세계조개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지난 8월 문을 연 이곳은 조개와 고둥을 테마로 하는 자연사박물관이다.

조개박물관은 40년간 선장으로 일해 온 임양수 해남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이 수십년간 수집해 온 조개, 고둥을 전시하고 있다. 300여평의 전시장에선 3천여종 1만1천여점의 세계 희귀 조개와 고둥을 전시한다. 작은 조개들이 모여 하나의 설치작품으로 탄생하기도 하며, 조개 껍질을 전시장 외벽에 가득 붙여 둬 관광객들에게 바다에 대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게 한다.

이어 만난 곳은 자은도의 ‘무한의 다리’다. 길이 1천4m, 폭 2m의 이 다리는 둔장해수욕장 인근에 조성돼 있다. 해변과 무인도인 고도, 할미도를 잇는 해상보행교로 ‘다리로 연결된 섬과 섬의 연속성과 끝없는 발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무한의 다리 인근으로는 ‘인피니또 뮤지엄’이 들어선다. 삼성의 리움미술관, 강남 교보타워를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하고, 목포 출신 세계적인 조각가 박은선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한다. 2024년 이곳에는 정원과 야외 조각 전시장, 카페와 책방, 세미나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 안좌도 ‘퍼플교’ ‘김환기 고택’
마지막으로 찾은 곳, 바로 안좌도다. 안좌도는 신안에서 출생한 세계적인 작가 김환기 화백의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고, 안좌면에 소재한 반월·박지도는 최근 ‘퍼플섬’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인기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반월·박지도는 전남도의 가고싶은 섬으로 2015년 지정됐으며, 행정안전부의 ‘2020 휴가철 찾아가고 싶은 33섬’으로 선정된 바 있다. 섬에 자생하는 보라색 도라지 군락지와 꿀풀 등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해 보라색 섬으로 콘셉트를 정했다.

두 곳의 퍼플섬을 잇는 ‘퍼플교’로 향했다. 퍼플교는 본섬인 안좌도의 두리항에서 반월도와 박지도를 걸어서 갈 수 있도록 만든 1.4㎞ 길이의 교량이다. 친환경을 고려해 목조로 만들어진 해상보행교를 건너니 마치 물 위를 걷는 듯 하다. 다리를 건너 도착한 섬은 온통 보랏빛이었다. 도로와 지붕, 가로등…,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보라색 섬인만큼 이곳은 여름이면 라벤더·자목련·수국 등 다양한 꽃이 펴 손님을 맞이한다.

퍼플교에서 보랏빛 향연을 감상하고, 마지막 코스인 ‘김환기 고택’으로 이동했다.

수화 김환기(1913-1974) 화백은 신안이 낳은 세계적인 화가이자 추상미술의 선구자다. 안좌면 읍동마을에 자리한 김환기 고택은 국가민속문화재(제251호)로 지정돼 있다. 1920년 지어져 올해로 100년이 됐다.

김 화백이 어린시절부터 광복 이후까지 작업을 했던 안채와 우측의 화실도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고택 뒷편에는 작은 언덕이 있다. 어린 김 화백이 읍동항으로 배가 들어오는 것을 지켜봤다는 집 뒷동산이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1931년 출생한 김환기 화백의 태 자리는 현재 고택의 위치의 건너편이라고 한다. 김 화백이 10살 되던 해 현재의 자리에 새 집을 짓고 이 쪽으로 터전을 옮겨왔다는 것.

세계적인 화가가 어린시절을 보낸 이곳에선 ‘김환기국제아트페스티벌’ 등의 국제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다만, 관광객들이 와서 상설적으로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는 평가다. 김환기 화백의 화실을 재현해 놓은 공간이라든지, 여타 문화시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트숍을 통해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기념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이 숙제로 남는다.

이에 신안군은 김 화백을 테마로 하는 ‘안좌지구 농어촌 테마공원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읍동마을 2천890㎡ 부지에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김환기 미술관을 짓는다.

신안군은 서울의 (재)환기재단과 협의해 김환기 화백의 예술혼을 기리고, 더욱 많은 이들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더 이상 신안은 고립된 섬이 아닌, 천혜의 자연경관과 문화예술로 넘실대는 아름다운 여행 자원으로서의 기능을 할 것”이라며 “군의 역점사업인 ‘플로피아 신안’과 ‘1도 1뮤지엄’을 잘 닦아 언택트 시대의 최고의 관광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신안=정겨울 기자